매일신문

[기고] 에밀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들

최근 식물학계는 왕벚나무가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제주 자생 올벚나무, 벚나무, 산벚나무 복합체의 교잡으로 발생한 종이라는 사실을 유전자 분석을 통해 최초로 증명했다. 왕벚나무는 일본산이 아니라 한국산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그렇다면 100여 년 전 제주에 있는 왕벚나무 자생지를 최초로 확인한 사람은 누구일까? 1908년 4월 15일 제주도 한라산 북측에 있는 관음사 뒷산 해발 약 600m 지점 한라산 자생 왕벚나무를 최초로 채집한 사람은 놀랍게도 프랑스 선교사 에밀 타케(1873~1952) 신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에밀 타케 신부의 묘가 대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에 있다는 사실이고, 식물학계에서는 그가 가톨릭 성직자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며, 가톨릭계에서는 그가 지난 세기 한국 식물 연구사에 있어서 선구적 식물학자였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에밀 타케 신부가 부산, 마산, 서귀포, 목포, 대구 등 우리나라 남부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선교사목을 했고, 자신의 선교 본당이 있는 지역에 제주도 토종 특산물인 왕벚나무를 심은 것이다. 대구의 경우 남산동 일대에 심었다. 에밀 타케 신부는 대구 남산동 유스티노신학대학에서 30년을 지내면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몸소 겪었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자신이 맡은 선교사제의 길을 걸었고, 식물학자의 길을 걷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앞서 사목했던 제주도에서 가져온 왕벚나무 세 그루를 심은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나무들은 최근 유전자 분석을 거쳐 왕벚나무 자생지를 두고 한국과 일본 간에 벌어져 온 논란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줬다. 에밀 타케 신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것일까. 그의 깊은 뜻이 늦게나마 실현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에밀 타케 신부의 묘가 우리가 사는 대구에 있다는 사실이다. 또 그가 왕벚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있는 왕벚나무 기준목(관찰 등 연구의 기준이 되는 나무)에서는 매년 벚꽃이 피고 있고, 제주시 봉개리와 서귀포시 신례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왕벚나무와 대구 남산동의 왕벚나무는 유전학적으로 보면 꽤 가까운 피붙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왕벚나무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달 4일 대구에서는 에밀 타케 신부의 식물 연구 및 사목 업적을 기리고 왕벚나무 통합생태론에 대해 살펴보는 콘퍼런스가 열렸고, 지난달 8일 제주도에서는 '왕벚나무 세계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식물학계와 종교계가 함께 관심을 나타냈다. 에밀 타케 신부의 삶이 그랬기 때문이다. 식물학자 및 사목자의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면모를 함께 갖춘 프랑스 출신 에밀 타케 신부의 삶의 흔적이 한국, 특히 대구에 지금 남아 있다. 마침 대구시와 프랑스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경제'문화'관광 등의 분야에서 우호 증대 및 교류 활성화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난달 11일 대구시, 프랑스대사관, 한불상공회의소가 그와 같은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간 MOU 체결은 이례적인 일이다.

에밀 타케 신부는 이 MOU를 좀 더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 그와 왕벚나무를 소재로 한 생태관광과 문화 교류다. 왕벚나무를 파리자연사박물관에 기념식수하는 것은 어떨까? 그 밖에도 의미 있는 스토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에밀 타케 신부와 왕벚나무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 출품한다면? 세계를 주목시키는 스토리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늘 고민하는 토종의 세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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