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한 아이를 위한 학교

2015년 현재 우리나라 직업명 숫자는 1만4천881개다.(고용노동부 조사) 국내 대학의 학과는 총 130여 개다. 하나의 전공에서 여러 분야로 진출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대학에서 이 모든 직업 분야를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대다수 분야가 학위 제한을 받는다. 가령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할지라도 학위 없이 교수나 교사가 될 수는 없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박사 학위가 필요하고,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준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세계기능대회 전기용접 분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사람이라도 용접 지도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용접 전문가는 용접을 그만두고 학위를 따야 하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는 연주를 접고, 학위 논문에 매달려야 한다. 교육부와 대학이 박사, 석사, 학사라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전문 실력이 있어도 교단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에도 마찬가지 규정이 적용된다.

대학 교육은 중요하다.

바이올린 연주를 잘한다고, 용접을 잘한다고 모두 교수나 교사가 될 수는 없다. 소양과 품성, 교수법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학위만이 사회적 실력, 경력, 능력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명이어서는 곤란하다.

분야별 업적과 학위를 상호 환산해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할 때가 됐다. 실력이 입증된 사람에게 학사, 석사, 박사 학위와 동등한 별도 명칭의 인정제도를 도입하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더라도 경력과 실력이 있으면 학사, 석사 혹은 박사와 동급의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

국내 직업만 해도 1만4천 개가 넘는데, 기껏 130여 개 전공 학위가 없다고 해당 분야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 나아가 콩쿠르나 기능 올림픽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흔해빠진 대학 졸업자들보다 못한 대접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착각이다.

우리나라는 가난했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교육을 하자니 콩나물 교실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 똑같은 과목을 일률적으로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학과목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두각을 나타냈고, 적성이 맞지 않는 아이는 뒤처졌다. 부잣집 아이는 성적이 떨어지면 고액 과외를 받아서라도 보충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은 대부분 낙오했다.

그래도 저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구조에서는 어떻게든 나라를 끌고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르다. 한국은 더 이상 저임금 기반의 대량생산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아니다.

사람을 키우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사이즈가 하나뿐인 신발에 전 국민이 발을 맞추느라 다수 국민이 걷기를 포기하는 것은 불행이고 낭비다. 국민의 3분의 1은 신발이 헐렁해 걷기를 포기하고, 3분의 1은 발이 졸려서 주저앉는 모양새로는 4만달러 시대를 향해 갈 수 없다. 일부가 아니라 다수가 자신의 재능과 취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한두 가지 재능은 있기 마련이다. 실력과 학력을 동등하게 인정하고 대접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면, 학부모들은 국영수 공부하라고 자녀를 들볶는 대신 자식의 재능을 찾으려고 애쓸 것이다. 학생들 역시 국영수에 재능이 없다고 해서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재능을 찾고 키우려 할 것이다.

대구시 교육청이 '한 아이를 위한 학교'를 기치로, 교육부에 '학습경험 인정제'를 요청했다. 학과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이 자신이 배우고 싶은 분야를 외부 전문가에게 배우고, 이를 '과목시수'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정규 교육과정 안에 수천 가지 분야 강좌를 개설할 수 없는 만큼 외부 전문가들의 경험과 실력을 활용해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방안이다. 그렇게 하면 학생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도 더 행복하고 부유해질 것이다. 예산 대비 효과도 높을 것이다.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대구시 교육청의 의지에 대해 교육부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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