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강

황인숙(1958~ )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중략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부분. 시집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당신은 불완전한 존재다. 불완전해서 한낮에 칫솔을 물고 멍하니 있을 때도 있고, 불완전해서 툭하면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불완전해서 마음이 계속 흘러나올 때도 많다. 당신은 역겹고 슬픔에 잠겨 있으며 위험한 존재다. 이 세계의 농담을 이해하기엔 당신은 너무도 잔정이 많다. 사랑하는 이의 배꼽은 안 보고도 그릴 수 있지만 몸이 흐린 날엔 당신은 외로움 때문에 방에서 혼잣말하는 늙은 토끼처럼 죽어간다. 얼마나 외로운지 당신은 누구하고도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당신의 침대엔 당신이 그동안 침을 흘리며 잠든 베개가 있다. 당신은 베개의 귀퉁이를 들고 기상캐스터가 설명하지 못하는 구름 속 여행을 떠난다. 사랑을 하지 못하면 금방이라도 괴물이 되어버리는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유일하게 사거나, 걷거나, 먹거나,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생명체다. 사랑을 하면 침을 흘리고 마는 초식동물과 우리는 가장 많이 닮아 있다. 가까운 왕국엔 미치지 않고는 건너갈 수 없는 세상이 있다고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