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
아침나절, 마당을 쓸고 있었다. 마당엔 벚꽃과, 살구꽃잎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는 바람이 좀 덜 부는 구석진 곳으로 몰려가서 수북수북 쌓여 있었다. 꽃잎들은 빗자루에 몸을 맡기고서는 순순히 체념을 하면서 쓸려가는 것도 있고, 무엇이 그리 미련이 남아서인지 가기가 싫어서 착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으며, 빗자루를 피해 폴폴 날면서 나와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달아나고 숨는 것들도 있었다.
마당 한쪽 모서리에 있는 살구나무를 쳐다보았다. 언제 그 만발하던 꽃잎들을 다 떨구었는지 무성한 나뭇잎들만 어우러져서 계절이 깊어졌음을 느끼게 한다. 세월이 어떻게 이렇게 빠를까, 올봄엔 별로 바쁜 일도 없었는데 꽃구경도 한 번 못 가본 채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새 꽃잎은 다 떨어지고 말았다.
지난주 중반, 신천 강변로길을 차를 타고 가다가, 차창 너머로 활짝 만개를 한 채 흐드러지게 늘어진 벚꽃을 보면서 탄성을 질렀었는데, 그조차도 주말부터 내린 비가 일요일 오후까지 추적추적 이어져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꽃잎들이 낙화유수(落花流水)가 되어 강물에 둥둥 떠내려 흘러가고 말았다. 나는 그 강물을 바라다보면서, 우리 인생(人生)도 저렇게 꽃처럼 피었다가, 꽃처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으로 덧없고, 허망하고, 공허한 심정에 나의 가슴에도 그날, 꽃잎이 떨어져 내렸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서 마당을 쓸고 있는 빗자루 끝에서는 쓸쓸함만이 묻어나고, 한 계절이 벗어던진 허물들을 쓸어 모으다 말고 나는 한순간, 어느 한곳을 멍하게 바라다보았었다.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는 눈이 부실만큼 새하얀 목화송이를 머리에 이고서 나를 쳐다보며 반가운 듯이 손을 흔들며 서 있는 민들레 한 포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누가 밟기나 하여서 다치기라도 할 새라 자기의 새끼들을 꼭 끌어안은 채 잔뜩 불안한 모습으로 웅크리고서도 언제나 나에게만은 마음을 터놓고 볼 때마다 인사를 건네 오던 민들레였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새끼병아리처럼 샛노랗게 물든 채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홀로 활짝 피어서 그 자태를 뽐내며 나와 입맞춤을 하더니 어느새 꽃잎을 다 떨구고서는 저렇게 하얀 이불 속에 홀씨들을 감춰 두고 남몰래 키워낼 수가 있었을까.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훠이 날려 보낼 것만 같은 모습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지며 위대한 우주 자연의 섭리 앞에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봄이 되면 꽃을 피워서 씨앗을 맺어 날려 보내고, 여름날의 목 타는 갈증과, 엄동설한 겨울날의 세찬 바람과 모진 눈보라 속에서 깊이깊이 잠들었다가는 또,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그렇게 저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지던 것이 올해로 꼭 3년째가 된다. 그러니까 3년 전, 어느 이른 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도 나는 오늘처럼 마당과 길을 쓸고 있었는데, 담장 밑 길모퉁이에 콘크리트 바닥이 갈라진 틈바구니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작은 풀을 한 포기 발견하였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심결에 그 풀을 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가는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측은하고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고 실눈같이 갈라진 시멘트 틈새에서 살려고 억척같이 뿌리를 틀어박고서는,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면서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차마 뽑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그해 봄, 만물이 화란춘성(花爛春盛)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하던 어느 날이었다. 풀이 있던 그 담장 밑에서 샛노랗게 활짝 핀 꽃 한 송이가 나의 눈에 들어와서 가까이 가서 보니 민들레 꽃이었다. 세상에! 잡초라고만 생각했던 그 작은 풀이 저렇게 커서 예쁘게 꽃 피우는 민들레였다니! 나는 너무나도 신기하고 경이로운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온 들판 지천에 널려 흔하디 흔한 게 민들레인데, 하필이면 그 좋은 곳을 다 버리고 저 응달진 도시의 길바닥에 주저앉아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기도 했었다. 그날 이후로부터 나는, 길을 쓸 때마다 늘 조심하면서 민들레가 잘 있는지 확인하며 지켜봐 왔는데, 작년에도 이맘때쯤에 꽃을 피우고 홀씨를 맺어 날려 보내면서 나를 감동시켰었다. 작년에는 유달리 한파가 심해 살아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므로, 그 질긴 생명력에 나의 놀라움은 더욱 컸던 것이다.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올해에도 어김없이 벚꽃을 따라와서 저 혼자 외롭게 꽃을 피우다가는 벚꽃 잎이 질 때에 홀연히 꽃잎을 떠나보내더니, 어느새 또 새끼들을 품에 안고 장한 어머니처럼 흰 백발을 나부끼며 조용히 이별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너의 모습을 나는 바라다보고 있다.
식물도감에 의하면, 노랗게 꽃이 피는 민들레는 약 1세기 전에 서유럽 쪽에서 흘러온 외래종이라는데, 어떻게 만년설로 덮여 있는 그 험준한 히말라야 준령을 넘고, 광활한 중국의 대륙을 횡단하여 멀고도 먼 해 뜨는 나라, 이 산하(山河)를 찾아왔을까?
무슨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인연을 따라서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들의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너는 떠나와야만 했을까. 기름지고 풍요로운 들녘, 햇살 따사로운 감나무 밭,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 복숭아꽃, 살구꽃 함께 어울려 놀며,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저녁노을 곱게 물들던 산골 고향, 꿈속에도 잊지 못할 그 정든 곳을 떠나서 어찌 이 낯설고 험악한 도시에서 힘들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택하게 되었을까?
그 질기고도 질긴 생명력과 투혼이 어쩌면 우리 민족의 혼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뜨거운 피의 박동소리를 듣는 것만 같아서 위대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 힘들었던 나날과, 암울했던 고통 속에서도 세월은 흘러갔다. 3년이란 세월을 차가운 콘크리트 틈새에서 자리 잡고 숙명이라고 체념하며 꿈을 접은 채, 새끼들을 운명의 길로 멀리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앙상한 뼈대 위에 피폐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후회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하고 있는 너의 모습을 지금, 나는 바라다보고 있다. 바람이 불어온다. 너의 꿈들이 날아오른다. 시야가 닿지 않는 허공으로 허공으로….
가라! 이제 다시는 오지 마라! 다시는 찾지 말고 너희들은 잘 살아라, 너희들은 잘 살아라! 휑하니 뚫린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너의 모습을 바라다보면서 오늘, 촉촉하게 이슬이 젖어오는 나의 두 눈 속으로 하염없이 봄날은 떠나가고 있다.
손노미(대구 동구 아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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