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민주권시대, 의사 결정에 직접 관여 못하는 국민…『잡초와 우상』

잡초와 우상/ 전원책 지음/ 부래 펴냄

'전거성'이라는 별칭과 '올(all) 단두대'라는 유행어의 주인공, 대한민국 대표 보수논객 전원책이 새 책 '잡초와 우상'을 펴냈다. 앞서 펴낸 '자유의 적들'과 '진실의 적들'에 이어지는 3부작의 마지막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 '시민의 적들'이라는 이름을 따로 붙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살피고 그 실체를 발가벗겨 드러낸다. 표를 얻기 위해 잡초를 선동하는 우상의 내면을 파헤친다. 우상은 잡초를 속이고 잡초는 우상에게 속는다. 잡초들은 모든 결정권을 우상에게 맡긴다. 그러나 온전한 선의를 가진 우상은 없기에, 이들 사이에는 통치와 복종만 나타날 뿐이다. 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다.

독설로 유명한 저자는 이 책에서 매서우면서도 진중한 독설의 향연을 펼친다. 우선 민주주의의 한계부터 짚어본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최종적으로 찾아낸 최적의 통치체제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정치적으로 평등한 존재가 된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민주주의는 이상으로만 존재한다. 17세기 프랑스 시민혁명을 즈음해 나타난 민주주의라는 '통치제제'는 그 쓸모를 지금 의심받고 있다. 그 원리와 숭고한 가치는 잘 알겠는데, 현실에서는 제대로 구현이 안 되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가장 평화로운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는 데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선택할 제도가 없어 민주주의 체제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시키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불완전한 틀 속에서 나타나는 핵심적 문제가 바로 저자가 책 제목에서도 언급한 우상과 잡초의 구도다. 저자는 이렇게 비교한다. 왕정에서는 모든 책임을 왕이 외로이 졌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선출된 통치자, 즉 우상이 영광만 홀로 누리고, 실정을 했을 때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은 모두에게, 다시 말해 잡초들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예전의 우상은 그러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불의에 저항하며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과거 정치적 영웅들이 그랬다.

이제 그런 우상은 없다. 오늘날의 우상은 잘 다듬어진 외모, 능숙한 화술, 계산된 행동을 조합한 선동으로 만들어진다. 정치적 신망이 쌓여 대중의 우상이 되는 경우도 없지만, 불의에 저항해 우상이 되지도 않는다. 설령 그렇더라도 그것은 철저히 준비된 것이다. 요즘 정치적 우상은 연예계 스타처럼 만들어진 배우들이다. 그들이 진짜 배우와 다른 점은 무지하여 무능하거나, 사악하여 천박해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4'13 총선만 봐도 그랬다.

그러면서 어떤 이너서클이 만들어진다. '국민주권시대'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중은 직접 관여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대신 '귀족의 피'를 물려받은 정치적 명문가, 재벌, 언론을 장악한 파워 엘리트 그룹이 모든 것을 주도한다. 그 이너서클의 중심에 보스가 있고 보스정치가 있다. 조직폭력배나 마피아와 다를 게 뭔가.

이 밖에도 저자는 여러 요인들을 언급하며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로 이행할 것을 우려한다. 통치자도 현명하고 정직해야 하지만, 대중도 민주주의를 충분히 이해하며 숙련된 민주주의자가 돼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가령 투표소에서 제시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주권을 행사했다고 자부할 뿐이다.

"민주주의는 비극"이라는 저자의 말마따나 책도 조금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불어넣어 주는 대안과 미래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결국 민주주의의 실체다. 저자가 '직시'에 이은 '직설'로 우리에게 '직면'시켜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플라톤부터 폴 존슨까지 수많은 사상가, 철학자, 역사학자 등의 생각이 치밀하게 구조를 이루고 있다.

변호사이자 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부산중고와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월간 '시민과 변호사' 편집주간과 자유경제원장을 역임했다. 시인의 길은 1977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자는 여러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패널이나 진행자로 나서며 논객의 커리어도 쌓아왔다. 대중에게 자신을 보수논객으로 제대로 각인시킨 것은 MBC '100분 토론'을 통해서였다. 요즘은 JTBC '썰전'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저자 특유의 호통과 촌철살인을 '따끈따끈한' 버전으로, 또 방송에서보다 풍부하면서도 섬세하게 정리된 글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현재 저자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함께 격주 목요일마다 연재하고 있는 매일신문 '새論새評'(새론새평) 칼럼이다.

416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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