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우리에게 소는?

'밭에서 죽으라고 일을 한 뒤에/ 나무에 묶인 채로 외롭게 우네/ 소의 말 아는 사람 어디 좀 없나/ 저 슬픈 울음소리 통역 좀 해봐.' 계명대 한문학과 이종문 교수가 지난 14일 자 본지에 소개한 조선 후기 시인 정래교가 지은 '늙은 소'(老牛)라는 한시다.

우리 소 역사는 5천 년으로 잡는다. 역사만큼 소는 우리에게 남다르다. 소와 관련한 셀 수 없는 사연과 인연은 그런 바탕에서 비롯했다. 소를 빗댄 속담, 설화 등으로 삶의 지혜를 오늘까지 이어주는 것이다. 소는 인간과 가장 친하고 가깝게 지내며 애환을 함께한 호의적인 동물이란 뜻이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는 소와 주인 사이에 얽힌 아름다운 사연도 한몫한다. 경북 여러 곳의 '의로운 소'(義牛) 이야기가 그렇다. 어미 잃은 갓난 송아지를 돌봐준 주인이 죽자 소도 울부짖으며 죽어 주인 무덤 밑에 소 무덤을 만들어 기렸다는 사연, 호랑이에 맞서 주인을 살려낸 소를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소의 중요성은 재산 가치에도 있다. 웬만한 농가 재산 목록 1호가 소였다. 농촌에서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 소를 팔았다. 대학을 빗댄 '상아탑'(象牙塔) 대신 '우골탑'(牛骨塔)이라는 표현이 생긴 까닭이다. 주인을 위한 노동에다 그 자식을 위해 팔리는 운명도 받아들였으니 어찌 대를 이은 충성이 아닌가?

그런데 정 시인이 태어난 17세기 소의 가치는 더했다. 당시 노비 매매 기준은 주로 소, 말, 베, 쌀 등이었다. 그 시절 노비 1명은 큰 소 1마리, 수컷 말 1마리, 면포 7필 등이다. 14세기에는 노비값이 더 쌌다. 1398년에는 말값의 3분의 1에 그쳐 조정에서 노비값을 말값과 비슷하게 올렸다. '인간이 가축보다 가벼울 수 없다'는 이유다. 속담처럼 '소가 웃을 일'이었던 시절이다.

정 시인의 시처럼 농부와 뭇 애환을 나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형 그림이 지난주 경북칠곡군농업기술센터 농업6차산업관에 내걸려 방문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칠곡 내 사진 자료 800여 매를 바탕으로 밀짚모자를 쓴 농부가 소와 함께 무논에 써레질하는 정경이 한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벽화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농촌을 지키며 고단했던 옛날 '죽으라고 일을 하는' 주인과 소의 모습이다. 관공서, 특히 농업기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관공서의 변신과 진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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