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칩거의 정치학'으로 본 정진석 효과는?

명백한 이유 있었던 칩거…YS 마산行, 내각제 무산시켜…손학규 강진 칩거 후 복귀 모색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휴일인 22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정국 구상을 한 후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5.22 /연합뉴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휴일인 22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정국 구상을 한 후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5.22 /연합뉴스

정치인의 말에는 힘이 있다. 정치인이 말하면 언론은 전하고, 또 해설을 붙여 생명력을 더한다. 그래서 여론의 중심에 있던 정치인이 위기나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에 입을 닫고 모습을 감추면 언론은 '칩거'라고 표현한다. 얼마 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충남 공주와 부여에 머물며 하루간 침묵하자 이 단어가 등장했다.

그들의 칩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비대위원과 혁신위원장을 선임할 전국위원회가 친박계의 보이콧으로 무산되자 칩거했다. 올해 3월 칩거로 취재진과 숨바꼭질을 했던 유승민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친박계의 불출마 선언 압박과 공천 배제 위기에 몰리자 8일간 칩거에 들어갔다. 무소속 출마 시한 당일 모친의 집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공천 배제가 확정되자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을 선언했다.

침묵 뒤에 따라오는 말의 힘은 더 강해진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침묵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1990년 민주자유당 대표였던 YS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 김종필(JP)의 자민련과 3당 합당 당시 합의한 내각제 합의각서가 언론에 유출되자 마산에 내려가 칩거했다. 자신을 쫓아온 기자들이 헉헉대며 무학산을 따라 오를 땐 입을 꾹 다물다가 정상에 오른 뒤 한마디를 던지며 긴 침묵을 깼다. "내 산 잘 타제?" 그 뒤 노태우가 YS 손을 들어주면서 대표직에 복귀했고, 2년 뒤 대통령이 됐다.

지금도 장기 칩거의 역사를 쓰는 정치인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다.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에게 패한 데 이어 재작년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년간 전남 강진 토굴에서 '토굴 정치'를 이어가는 손 전 고문은 지난 18일 "새판을 시작하겠다"고 밝히며 정계 복귀 운을 띄우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칩거가 정치적 파워를 가지려면 긴 침묵 뒤 상황을 반전할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1990년 YS의 칩거와 지난해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탈당 전 칩거였다. 당시 내각제 각서 유출 사건은 여권 2인자 자리를 굳히려던 YS에게 최고의 정치적 위기였으나 "국민의 동의와 야당의 협력 없는 개헌은 절대 안 된다"고 밀어붙였고, 노태우의 항복을 받아 상황을 반전시켰다. 지난해 12월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전 칩거에 들어갔던 안 공동대표는 야권 분열의 원흉으로 몰렸지만 이후 '신당 창당' 카드를 던졌고, 20대 총선에서 제3당으로 우뚝섰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정 원내대표의 1박 2일 칩거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다는 해석이 많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친박 에이전트'(Agent)가 아니라는 의미의 칩거였다면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놔야 했다. 전국위 보이콧을 한 친박에게 삐쳤다는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해석했다. 전계완 시사평론가는 "전국 당원에게 비대위원장 후보의 거취를 묻고 아니면 물러서겠다는 정도의 강력한 카드를 던져야 칩거 정치가 힘을 갖는다. 만약 친박과 타협해 갈등을 봉합하면 정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부잣집 도련님의 한계'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것"이라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