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새난슬 "이혼녀·싱글맘…상처 인정하니 흉터도 예쁘네요"

감추고픈 상처를 인정하고 흉터를 가감 없이 꺼내 보인 여자가 있다.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 기도를 했고 남편과의 갈등 끝에 이혼했으며 지금은 싱글 맘으로 산다고 당차게 고백하는 여자다.

가수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의 외동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정새난슬(35)이다. 셋째 작은아버지가 붙여줬다는 이름은 '새로 태어난 슬기로운 아이'란 뜻이다.

그는 이달 '문제적 여자의 파란만장 멘탈 성장기'란 부제를 붙인 자전 에세이집 '다 큰 여자'(콘텐츠하다)를 내놓았다. 그리고 책을 농축한 듯 연결 고리가 있는 동명 앨범을 발표했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정새난슬은 '음유시인', '민중가수'로 불리는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과는 첫눈에 거리가 있었다. 양팔과 손가락에 타투가 빼곡하고 모델처럼 늘씬하고 화려한 외모이다. 펑크 밴드 보컬이자 타투이스트였던 전 남편이 결혼 당시 손가락에 새겨준 다이아몬드 반지가 싫어 나머지 손가락에도 타투를 했다는 빠른 말투가 흥겹기까지 하다.

정태춘이 책의 '붙이는 글'에 "나는 아직 내 딸을 잘 모르고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다"라고 쓴 문장이 확 와닿는다.

책과 앨범이 나온 결정적인 계기는 이혼이라고 한다. 그는 짧은 연애 기간 뜨겁게 사랑해 2013년 결혼했지만 가부장적인 남편과 우울증,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지난해 7월 2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예전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흉터로 "이것(책과 앨범)이 남은 것 같아 꽤 예쁜 흉터"라고 씩씩하게 말한다.

그는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니 민얼굴을 인정하고 솔직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 큰 여자'란 제목은 반어적인 듯 모호하다.

"성인, 어른이란 단어와 달리 '다 큰 여자'란 말이 모호하고 모순적이어서 좋았어요. 30대 중반의 여자가 몸은 다 컸지만 다 크지 않았다는 반어적인 의미도 있고요. 완료가 아니라 열린 제목이죠."

책에는 시끌벅적한 결혼과 이혼, 싱글 맘으로서의 단상과 여자로서의 욕망, 예술에 대한 사색, 사랑하는 딸과 고양이·부모와 친구들 이야기가 시원스런 필체로 담겼다. 너무 솔직해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너무 내밀해 공감도 된다.

그는 자살 기도에 대해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무기력하고 마음이 뻥 뚫린 상태였다"며 "나로 사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어두운 에너지가 잠식했다. 충동적이었는데 하루 만에 깨어났다. 부모님이 무척 놀라고 힘들어하셨다"고 고백했다.

"벌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저와 비슷한 시기 아이를 낳은 페이스북 친구가 '우울해요, 도와주세요'란 글을 남겼는데 전 그때 '행복하다'는 늬앙스의 사진을 올렸죠. 만약 제가 공감해줬더라면 그 페친은 '나만 문제'란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제가 세운 한가지 원칙은 '운동 안 했는데도 날씬하다', '타고난 좋은 엄마다'란 식으로 다른 여자들에게 덫을 놓지 말자는 것이예요."

책이 내면의 기록을 요할 때 써내려간 것이라면 앨범은 삶을 견인할 게 필요해 아버지와 맞잡고 한 프로젝트이다.

그는 뮤지션 부부의 딸이지만 음악에 발을 들여놓을 심산은 없었다. "엄마 같은 낭랑한 목소리도, 아빠 같은 작사, 작곡 능력도 없다"고 생각해서다. 영국 런던 첼시 칼리지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패션, 홍보 등의 일을 하다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이것저것 손대던 중 서른 살에 취미삼아 기타를 잡았다. 악기에 소질은 없었지만 기타 첫 레슨을 다녀와 바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정태춘이 편곡을 더한 이번 정규 앨범에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미니앨범의 5곡과 신곡 6곡이 수록됐다. 정새난슬의 몽환적인 사운드와 어둡고 날카로운 노랫말이 정태춘의 손길을 타고 따뜻하고 서정적인 질감으로 표현됐다. 이미지가 풍부한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노래마다 단편영화를 연출하듯 아버지와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그런데 의견 충돌이 많았죠. 신시사이저의 여러 소리 중 제가 원하는 건반 소리를 아빠가 바꿔놓기도 해 투닥거렸어요. 하하."

신곡에는 이전 앨범과 달리 과거의 상처에 침몰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한 딱지가 덮였다.

"오르막길을 달려간다"('오르막길)며 희망에 관한 자기 암시를 하고, "어지럽게 흔들리고, 눈부시게 폭발"했지만 "입 벌인 상처로 노래"('다 큰 여자') 하겠다고 의지를 보인다. "숨 막히는 답답한 방"에도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난다"('빛')며 자신을 보듬기도 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철이 안 든다는 말처럼 다중적인 나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게 삶인 것 같다"고 했다.

"저요? 완전체란 말을 믿지 않고 '다 큰 여자'란 반어법을 쓰는 여자죠. 하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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