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공익법인제도 선진화시켜야

계명대 대학원(경영학 박사) 졸업. 현 한국세무사회 사회공헌위원장. 현 세금바로쓰기납세자운동 대구경북회장
계명대 대학원(경영학 박사) 졸업. 현 한국세무사회 사회공헌위원장. 현 세금바로쓰기납세자운동 대구경북회장

한국 공익법인 설립'운영 까다로워

허가제 영향 설립기간 반년씩 걸려

다양한 목적의 법인 설립도 어려워

40년 된 낡은 제도 개선 목소리 높아

국채보상운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부운동이다. 1907년 일제의 침탈 야욕인 강제차관을 갚아 자주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대구의 김광제'서상돈 등은 2천만 동포에게 호소하였다. 석 달치 담배를 끊어 모은 돈으로 나랏빚을 갚아 주권을 수호하자는 제안에 전국의 남녀노소 모두가 동참하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보모였던 최송설당 여사는 1931년 "길이 사학을 경영해 민족정신을 함양하라"면서 전 재산을 희사해 사학 김천고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학교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하는 전자의 의로운 기부를 의연(義捐)이라 하고, 후자의 독립적인 기부를 출연(出捐)이라 한다.

본래의 아름답고 바람직한 나눔문화의 기본은 기부와 운영의 단절이다. 우리나라는 기부문화의 개념이 엄격한 편이지만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프랑스는 개인이나 법인이 기부할 경우 기부가액의 25% 내 범위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독일은 공익법인에 출연된 재산으로부터 얻은 수익의 3분의 1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부자 또는 그의 친척에게 적정한 생활비를 지급하여도 공익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결국 공익법인의 핵심은 기부와 운영의 단절도 좋지만 기부의 활성화와 운영의 투명화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비영리 공익법인은 정부 또는 시장이 감당하기 힘든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장학, 연구, 학술, 자선은 물론이고 환경, 양성평등, 빈곤추방, 질병퇴치, 에너지 분야와 자본주의의 맹점인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소득양극화 해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스웨덴의 노벨재단, 미국의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 일본의 도요타재단, 그리고 최근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이 435억달러(약 50조원)를 출연하고, 페이스북의 대주주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가 487억달러(약 56조원)를 출연하여 사회공익에 사용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기부를 활성화하고 공익법인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기부자가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하는 순간 그 재산은 기부자의 재산이 아니다. 공익법인이 의무를 이행치 않거나 해산하는 경우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다른 공익법인에 그 재산이 귀속되도록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공익법인 설립과 출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익법인 설립은 6~12개월이 소요된다. 실례로 최경주재단의 국내 설립에 반년이 걸렸지만, 미국에서는 이사 4명의 신고만으로 바로 설립돼 그 즉시 미국 남부의 토네이도 피해자들에게 기부할 수 있었다. 선의의 기부를 어렵게 만드는 공익법인 설립 허가제를 인가제로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익법인의 범위(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12조)는 종교, 학교, 사회복지, 의료, 공익법인 운영사업, 예술 및 문화, 공중위생 및 환경보호, 공익목적 기부금을 운영하는 사업 등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교육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부처의 사업내용에 포함되어야 설립허가가 가능하다. 공익법인의 운영사업은 1976년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로서 그 적용 범위(제2조)가 학자금, 장학금, 연구비, 학술, 자산 등에 한정돼 있다.

지금의 법률에는 선진국들의 활동범위인 양극화 해소, 양성평등, 에너지 등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테마에 관한 규정이 없어 다양한 공익법인을 설립할 수가 없다. 40년이 지난 낡은 제도 때문이다. 영국, 일본과 같이 모든 공익법인을 컨트롤할 수 있는 가칭 국민공익위원회를 두어 총괄적이고 독립적으로 관장하게 해야 한다. 또 1.5%대의 초저금리시대에서는 기본 재산 일부를 고유목적에 사용할 수 있게 기본재산유지의무(제11조)도 변경해야 한다.

큰 재단의 기부 재산은 기부자가 가꾼 회사의 주식이 대부분이다. 저커버그도 그렇고, 착한 기부로 225억원의 세금폭탄을 맞은 수원교차로 황필상 대표 등도 마찬가지다. 저커버그가 우리나라에서 기부했다면 5% 초과분에 대해 약 19조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공익재단의 기부활성화를 위해서는 의결권 있는 주식의 5%(성실공익법인 10%) 초과분에 대한 증여세 과세규정을 일본처럼 50% 초과분으로 확대돼야 한다. 그룹의 우회지배를 막기 위해서라면 출연과 동시에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정관에 그룹지배 제한 규정을 두면 해결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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