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박 대통령님 탈당하시지요

박근혜 대통령님 새누리당을 탈당하시지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한 4명의 직선 대통령이 재임 중 소속 정당을 탈당했습니다. 물론 모두 임기 마지막 해에 안팎의 압력을 버티다 견디다 못해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한 탈당들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임기 4년 차인 박 대통령님과는 다릅니다.

대통령들의 탈당 이유는 다양합니다. 친인척이나 측근 등의 권력 주변 비리가 터져 정권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거나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에 따라 집권 여당 내부에서 다음 선거를 의식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차기를 노리는 여권 대선 후보와 대통령 사이에 권력과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로 후임자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탈당도 있었습니다. 또 대통령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야당의 선거 중립 요구도 대통령의 탈당을 재촉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님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임기 절반의 반환점을 넘어선 집권 4년 차쯤 되면 권력자 주변 곳곳에서 비가 새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습니다. 박 대통령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생이 둘 있지만 존재감이 거의 없습니다. 측근들도 그렇습니다. 극소수 비서진의 인의 장막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이들의 부정과 비리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정치적 상황을 보면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지금이 박 대통령님의 새누리당 탈당을 위한 최상의 타이밍이라는 이유입니다.

대통령님은 지난번 언론인들과의 만남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과 국가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대한민국호 앞에는 산적해 있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국내외 현안이 산더미 같습니다. 그런데 여대야소였던 19대 국회와 달리 20대 국회는 여소야대입니다. "대통령중심제라고 하지만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과반의 제1당을 등에 업고 할 때도 잘 구하지 못한 야당의 협조입니다. 제2당 소속 대통령으로 잘 이끌어낼 가능성은 더욱 낮습니다.

게다가 지금 새누리당이 보여주는 모습이라면 더 무망합니다. 대통령님의 손때가 묻은 새누리당이지만 4'13 총선에서 민심의 호된 심판을 받은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가 끝난 지 40일이나 지났는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거를 하면 100석 얻기도 힘들다고 할 정도입니다. 29%라는 역대 최악의 지지율도 과분해 보입니다. 친박들은 최악의 공천으로 선거에서는 졌지만 공천에서는 이겨 당내 다수가 됐습니다. 새누리당이 친박당이 된 이유입니다.

대통령님은 얼마 전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선거 마케팅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문제는 쉽게 풀립니다. 친박 걱정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통령님 평소 지론처럼 오로지 나라와 국민만 걱정하시면 되니까요. 새누리당의 대통령도 아닌 친박당의 대통령이라면 야당의 협조는 난망일 텐데 대통령님이 친박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사정은 180도 달라질 겁니다.

대통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국민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새누리당 탈당은 그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대통령님이 친박적이거나 파당적이 아니라 초당적이라면 야당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상 밖으로 협조를 더 쉽게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정권을 탈환하려는 야당도 대통령 눈치는 봐야 합니다.

선제적이고 주체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새누리당을 탈당하시지요.

오늘 먼 길 떠나시는 분께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건 아닌지요? 파리 구상이든 나이로비 구상이든 나라 밖에서 좋은 구상을 해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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