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방위사업청의 군납 고춧가루 기준, 농민 편익으로 바꿔야

방위사업청은 과거 일부 군납 고춧가루의 품질 하자 등 이유로 군납 농협에 과징금 9억6천만원을 부과했다. 과징금 부과 고춧가루는 지난 2013년과 2014년 2년 동안 납품된 2천870여t 중 137t이다. 납품 농협은 경북 남안동농협 등 전국 5곳으로 고추 농가와 농협들이 반발하고 있다. 고추 농가 현실을 외면한 불합리한 납품 기준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농가에서 건조한 고추를 농협이 수매'가공해 납품한다'는 납품 기준에 따른 것이다. 기준대로라면 군납 고춧가루는 먼저 농가에서 고추를 말려야 한다. 농협은 이렇게 말린 고추를 사들여 가루로 만들어 납품해야 한다. 하지만 농협은 농가 생산 홍고추를 직접 구입, 말려 가공해 납품했다. 기준을 어긴 셈이다. 방위사업청이 이들 고춧가루에 대해 품질 하자 불량 고춧가루 판정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한 배경이다.

군납 규정에 따르면 농협의 잘못은 분명하고 방위사업청의 판단은 옳다. 그러나 고추 농가 현실을 살펴보면 농협의 기준 위반은 이해할만하다. 우리 고추 농민은 영세하고 나이도 많다. 좋은 수매가격을 받으려면 세척과 건조를 잘해야 되는데 이들이 이러한 시설을 제대로 갖추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농협이 홍고추를 사들여 농협 보유 세척'건조시설을 활용해 가공하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품질 좋은 제품의 납품 명분과 함께 농민 입장까지 고려한 일이겠지만 농협은 규정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방위사업청도 기준에 따라 내린 판단인 만큼 충분히 할 말은 있다. 그럼에도 군납 기준과 농가 현실 사이의 괴리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책임이 더 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방위사업청 판단에 명백한 잘못이 있다고 시정하도록 한 조치도 바로 때문이다. 이런 엇갈린 규정과 위반 때문에 정작 피해는 농민에게 돌아간다. 방위사업청은 이런 현실을 감안해 규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또한 앞으로 어떤 규정을 정하더라도 먼저 국민의 편익에 서서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현실을 무시한 규정이야말로 마땅히 폐기해야 할 규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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