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잘못된 선택의 아쉬움

권영민
권영민

"'베토벤' 하면 생각나는 곡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운명이 노크한다고 하는 '운명 교향곡' 또는 연말이면 여러 공연장에서 연주되고 환희의 송가로 대변되는 '합창 교향곡' 정도로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한국인이 좋아하는 교향곡에 베토벤의 이 두 곡이 최상위에 올라가 있다고도 한다. 교향곡은 원래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인데, 슈베르트의 8번 교향곡은 그렇지 않고 두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 물론 처음부터 두 개의 악장으로 작곡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이 교향곡은 두 개의 악장으로 연주되고 있고 그래서 제목도 '미완성 교향곡'이다. 하지만 보통의 교향곡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완성도가 뛰어나 여러 연주회에서 자주 연주되곤 한다.

작곡가가 작곡을 하다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였는데, '레퀴엠'을 의뢰받고 작곡하던 모차르트와 스칼라 극장으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고 '투란도트'를 작곡하던 푸치니가 그 사례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미완성의 상태로 연주되고 있지는 않다. 작곡가가 사망하였는데 어떻게 곡이 완성될 수 있었을까? 제자들이 완성한 것이다. 그 연유는 두 곡의 공통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두 곡 모두 돈을 받고 의뢰를 받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미사곡과 오페라 곡으로 당시에도 대가로 손꼽히던 작곡가의 마지막 유작을 어떻게든 완성해야겠다는 명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제자에 의해 대리작곡(?)되어 완성되었다는 것을 대부분의 관련자들이 알고 있었지만, 당시는 물론 지금도 모차르트와 푸치니의 곡으로 볼 수 없다고 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일까?

창작의 섭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작이란 원래 말 그대로 그동안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창작자의 모티브(예술작품을 표현하는 동기가 된 작가의 중심 사상)가 중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위의 두 곡에서는 이미 많은 부분을 완성해 놓았고 또 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제자에 의해 마무리되어 큰 무리가 없다는 평이다.

요즘 세간에서 한 유명인의 대작으로 인해 말이 많다. 정확한 내막은 잘 모르겠다. 미술계 안에서는 만연하지는 않지만 1900년도 초부터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제작형태가 존재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니, 대작 자체만을 가지고 나무라기는 무리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감추어야 할 것과 감추지 말아야 할 것의 기로에서 내린 잘못된 선택이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