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털보 기자의 이슈 털기] <9> 권력자·재력가의 혼외자

"대통령, 검찰총장, 굴지의 재벌총수가 뭐가 부족해서 혼외자를 두나?"

이번 주는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이른바 권력자,재력가의 '혼외자 논란'을 이슈로 털어보려 한다.

YS의 묘비 제막식이 거행되는 날에 고인에게 달갑지 않은 이슈를 들고나와 유감(有感)이기 하지만 권력자와 재벌총수의 혼외자 얘기를 다른 관점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사회에서는 이혼 또는 결별 후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토 때문에 아이의 부모가 다른 경우가 종종 생긴다. 중동'동남아의 로열 패밀리들 중에는 공식적으로 아버지는 한명인데, 어머니가 여러 명인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왜 권력자나 재벌총수의 '혼외자'가 핫이슈로 등장할까. 그 이유중 하나로 대한민국 사회의 이중성을 들수 있다. 현 가족을 그대로 지키면서, 또다른 씨를 뿌려 낳은 자식이 혼외자다. 한국사회에서 '혼외자'는 자칫 겉으론 멀쩡하게 가정'권력'권위'재력을 유지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체면치레'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혼외자를 둔 권력자'재벌총수의 이중성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프로이드의 '리비도'와 카뮈가 말한 '결혼 폐악'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말한 '리비도'(성적충동)와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가 말한 '인류의 결혼제도 폐단'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혼외자 사태를 보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혼외자는 프로이드가 말한 '리비도'를 이성이 억제하지 못한 탓이고, 카뮈가 말한 결혼의 부조리를 몸소 실천한 결과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2가지 기본적 욕구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공격 욕구인 '타나토스', 또 하나가 성욕구인 '리비도'. 이 둘은 삶의 큰 에너지로 작용한다. 특히 리비도는 상황에 따라 자아의 도덕성(양심)과 부딪친다. 자아는 리비도가 커질 때, 억제와 억압, 절제 등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권력과 돈을 가진 권력자나 재벌총수 등은 '리비도'의 유혹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리비도에 맞서는 자아의 방어기제가 흐트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인류의 결혼제도를 폐악으로 여기고, 실제 본인도 한 여자에 만족하지 않았다. 카뮈는 이미 그 시대에 결혼을 인류의 부조리한 제도 중 하나로 보고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본인의 삶(이혼과 재혼 그리고 불륜)을 통해 실천했다. 하지만 혼외자를 둔 대한민국의 가장들은 결혼의 부조리함을 부르짖지 않고, 뒷문을 드나들며 카뮈의 신념을 실천한 위인(?)들이다.

◆더 열린 사고로 보면 이해할 측면도

전직 대통령의 재혼과 혼외자는 대한민국 헌정사를 봐도 놀랄 일도 아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프란체스카 여사와 재혼했다. 이 대통령은 16세에 고향 황해도 평산에서 '박씨'라는 부인과 첫 결혼을 하고, 장남 이봉수를 낳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장남은 1906년 장티푸스로 미국에서 사망했다. 이후 부부 금슬에 금이 가고, 1934년 프란체스카 여사와 재혼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한미협회 이사로 해방 이후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데도 크게 일조했다.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혼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두 대통령 모두 재혼이 정치적 성공의 발판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6'25전쟁) 중에 육영수 여사와 두번째 결혼을 했고, 김 전 대통령 역시 이희호 여사와 두번째 결혼 했다. 육영수 여사와 이희호 여사는 두 전직 대통령의 훌륭한 배우자이자 정치적 동지가 되었다.

멀리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카를라 부르니는 세번째 부인이지만 이들 부부는 프랑스 국민들 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호감을 얻을 정도로 외교력과 패션 등에서 주목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혼이 첫번째냐, 두번째냐, 세번째냐는 가장에게 또는 가정에서 결코 흠잡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 YS의 혼외자 논란은 재혼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분명한 것은 손명순 여사와의 결혼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여인을 탐했다는 사실이다. YS는 혼외자 논란속에서도 권력은 잘 유지했다. 문제는 YS 사후다. 혼외자를 자처한 김모(57) 씨는 (사)김영삼 민주센터를 상대로 3억4천만 원 상당의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외지만 나 역시 YS의 씨를 받은 자식이며 유산의 일부를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혼외자에게도 인권과 권리가 있는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呼父呼兄을 不許)…." 혼외자는 홍길동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서자 취급을 하는 것도 인권적 평등으로 보면 심각한 문제다.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부터 깨야한다. '조강지처'와 '첩'이라는 이분적적 사고도 문제다.

지금 우리사회는 반상이 구분되는 조선시대 계급사회가 아니다. 혼외자를 태어날 때부터 죄인 취급을 하고, 제품으로 따지자면 '불량품'으로 보는 시각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인권존중 사상을 병들게 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왜 처음부터 떳떳하게 혼외자를 밝히지 못했나하는 아쉬움도 든다. 물론 혼외 아들과 그 어머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이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혼외자와 그 가족의 인권마져 자신의 위신과 체면을 위해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은 시대에 맞지 않다. 이런 사고는 혼외자를 두번 죽이는 일이다. 채 전 총장의 거듭되는 거짓말이 더 문제가 되긴 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검찰총장직을 사퇴할 일인지는 따져 볼 일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복 딸도 '혼외자'로 이런 저런 풍문들이 떠돌았다. 신병상의 문제로 미국에서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혼외딸'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이 얼마나 보호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밝혔다면, 자신의 씨를 받은 자녀가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할 의무도 있다.

불행히도 한국에서 혼외자들은 그늘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결국 프로이드가 말한 '리비도'를 이상하게 발현시키고, 카뮈가 부르짖었던 '결혼 폐약'에 동조하는 이중성이 낳은 결과다.

혼외자, 이복 자녀가 있다면 자신이 당해야 할 도덕적 비난은 당당히 감수할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추구권도 당연히 뿌린자가 보장하고 거둬야 할 일이다.

문득, 임택근 아나운서의 이복형제인 '임재범'(가수)과 '손지창(탤런트'가수)이 혼외자의 바람직한 사례로 떠오르는 건 왜일까.

※만평 형식의 이 코너는 한 주간에 대한민국 또는 대구경북을 뜨겁게 달군 핫이슈를 해학적으로 풀거나, 통찰력있게 뒤집어 봄으로써 가벼운 통쾌함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특정인을 악의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