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나가사키 원폭의 의미

영국의 역사가 폴 존슨은 자신의 책 '모던 타임스'에서 나가사키(長崎)가 원자폭탄을 맞은 것은 "역사의 잔인한 아이러니"라고 했다. 기독교인이 많았던 나가사키가 일본 제국주의의 정신적 토대였던 신도(神道)에 대한 저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란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멸망을 위한 '아마겟돈'으로, 정신적으로 서구에 가장 친화적인 나가사키가 선택됐으니 그런 해석을 내릴 만하다.

이런 '잔인한 아이러니'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종교적 의미를 드리우게 했다. 그런 의미를 찾아낸 대표적인 인물이 기독교도로 방사능을 전공한 의사인 나가이 다카시(永井隆)였다. 그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기 전에 이미 방사능에 피폭된 상태였지만 원폭 투하에 따른 피폭이 겹치면서 1951년 43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음을 얼마 앞두고 '나가사키의 종'이란 명상집을 펴냈는데 그 메시지는 매우 기독교적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는 기독교의 신이 세상에 잘못을 일깨워 주기 위해 내린 형벌이란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원폭이 오랜 기독교 전통의 도시에 떨어졌다는 사실은 그에게 원폭이 신의 개입임이 더욱 분명해 보였다. "나가사키는 일종의 선택된 희생물로, 순진한 어린 양이 제단에서 살육되어 불에 타는 희생을 거치듯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모든 국가들이 저지른 죄악을 속죄한 것이 아닐까?"

이런 기독교적 해석에 대해 당시 일본인들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얼빠진 생각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가이의 해석은 항복 직후 일본인을 사로잡은 '평화주의' 정서와 맞물리면서 '전쟁 자체가 가해자이며 일본인들은 그 희생자일 뿐'이라는 희한한 '희생자 의식'을 만들어냈다. 일본인은 아직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만 방문하고 나가사키는 찾지 않는 데 대해 나가사키 시민들은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히로시마에 가려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일 게다. 이해는 가지만 공감하기는 어렵다. 나가사키 원폭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원폭 투하는 나가사키에는 재앙이었지만 일본의 침략에 신음하는 아시아 국가 국민에게는 해방의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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