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질서야, 우리 생활문화에 뿌리 좀 내려라!

일본동양대학 박사과정 수료. 전 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전 대구한의대 외래교수
일본동양대학 박사과정 수료. 전 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전 대구한의대 외래교수

지난달 일본의 니시큐슈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와 일본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함께 가고 싶다고 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의 생활문화 차이 비교'를 과제로 부모동행 학습으로 동행했다. 초등학생 딸의 눈에 비친 첫 번째 다른 점은 '질서'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바쁜 사람을 위하여 한 명도 빠짐없이 한쪽을 비워놓고 한 줄로 선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다른 점은 '음식점 신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점 밖의 모형을 보고 음식을 시켰다가 실망할 때가 많았는데 일본에서는 디스플레이한 모형 음식보다 실제로 더 잘 나와서 기분이 좋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청결'이었다. 일본의 도시와 농촌 어디를 가나 깨끗하게 보였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 '질서를 잘 지키는 일본'인 것을 보면 우리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딸과 방문했을 때가 구마모토 대지진(4월 14일)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난 4월 21일이었다. 4월 23일 아베 총리가 피난소를 방문해 피해 주민 앞에 무릎을 꿇고 낮은 자세로 그들을 위로하며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한편, 일본 최고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이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자원봉사를 한 사실이 나중에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많은 외신들이 놀란 것은 피해 지역 주민들의 차분한 대응 태도였다고 한다. 피해 주민들이 큰 재난을 겪은 후 놀라고 불안해 보이기는 했지만 당황해 하는 기색 없이 질서를 지키며 턱없이 부족한 지원 물자에도 불평하는 사람 없이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안내요원의 지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질서를 잘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구마모토 지진과 같은 재해가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하였다. 시내 공원에서 동료, 자원봉사자와 함께 시민축제 부스 운영을 맡아 많은 시민들과 함께 즐기며 성황리에 축제를 마칠 수 있었다. 부스를 정리한 후 자원봉사자 어린이 네 명과 함께 지친 몸을 이끌고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고 지하 공용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젊은 커플이 우리를 가로질러 제일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차례를 지켜 뒤에 타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였고 타려고 하니 정원 초과로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내려야만 했다. 결국은 두 번을 나누어 타야만 했던 상황을 지난 뒤에 생각하니 '질서 좀 지키자'고 한마디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센터(CEBR)가 내놓은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7위가 될 전망이라고 하는데 생활문화에서는 부끄러운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OECD 가입 국가 중 1위(2014)라는 사실은 질서와 생활문화가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면 하루에 1회 이상은 사고 위험을 만나게 되고 욕하지 않고 운전하기 어려울 만큼 기본적인 질서를 외면하고 있다. '질서를 지키자'는 구호는 멀리서 들릴 뿐 자신의 생활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다"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질서 역시 공부나 구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물질적으로 누리는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우리의 생활문화도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질서는 습관이고 버릇이다. 생활 속에서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질서가 생활문화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한다. "질서야,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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