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고 보면 귀여운 기생충, 좀 더 관심있게 알아보세요…『기생충 콘서트』

기생충 콘서트/서민 지음/을유 문화사 펴냄

기생충 박사가 쓴 기생충 이야기다. 지은이는 '인간이 멸종하더라도 기생충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생충은 과연 어떻게 다른 생물에 기생하며 살아왔을까. 기생충들의 생존전략은 다양하다. 숙주가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사는 '더불어 살자충'도 있고, 알이나 유충을 종숙주에게 보내기 위해 중간 숙주를 죽이는 '너 죽고 나 살자충'도 있다. 생존방식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자손 번식이다. 번식을 위해 기생충은 숙주를 돕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기생충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분된다. 보이는 것을 연충(Helminth)이라고 하고, 안 보이는 것을 원충(Protozoa)이라고 한다.

설사를 야기하는 원포자충은 크기가 8∼10마이크로미터로 작으며, 원충에 속한다. 이 기생충에 감염되면 입맛이 없어지고 피로, 체중 감소, 복통이 생길 수 있다. 대표적 증상은 물 같은 설사다. 대략 7일간의 잠복기를 거친 뒤 설사가 시작되는데, 건강한 사람은 2주 안에 설사가 멎지만, 면역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은 설사가 지속된다.

원포자충은 사람이 유일한 종숙주다. 그들은 인체의 소화기관 세포에 들어가 짝짓기를 하고, '오오시스트'라는 알 비슷한 것을 대변을 통해 내보낸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면 감염된다. 그러나 사람 몸 밖으로 나간 오오시스트는 수주간 숙성돼야 다른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변이 위생적으로 처리되는 곳이라면 화장실 갔다가 나온 뒤에 손을 안 씻어도 원포자충에 감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화장실 갔다가 나온 뒤 손을 비누로 잘 씻는다고 볼 수는 없지만, 원포자충에 감염되지 않는 까닭이다. 오오시스트의 숙성기간이 짧았다면 화장실 갔다가 나온 뒤 손 안 씻는 사람들은 설사로 고생깨나 했을 텐데.

대변 처리가 위생적이지 못한 나라에서는 원포자충 감염이 일상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후진국 역시 원포자충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감염 여부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시약 값이 비싸고, 검사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 병도 아니고, 설사의 원인은 많으니 굳이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대변 처리가 위생적인 선진국에서는 감염될 가능성이 낮아서 이 기생충을 모르고, 후진국에서는 진단이 어려워 이 기생충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간다.

이 책은 기생충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물고기 혀를 없애놓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신이 혀 노릇을 대신하는 시모토아 엑시구아, 잠복기 동안 심장을 망가뜨려 20년 후 갑작스럽게 사람을 죽게 만드는 크루스파동편모충, 고환을 이동시키는 이전고환극구흡충,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머릿니 등 많은 기생충들이 등장한다.

오직 사람만을 숙주로 삼지만, 남자 몸에서는 열흘도 못 견디고 여성의 몸에서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살면서 고통을 주는 질편모충, 호랑이에 필적할 만한 멋진 이빨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구충도 있다. 대부분의 병원체가 그렇지만, 왜소조충은 유난히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기생충인데, 만만하게 봤다가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을 만큼 흉악한 놈이다.

지은이 서민은 단국대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기생충과 매우 가깝게 지내는 사이이고 기생충에 좀 더 관대해지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본인은 기생충에 감염된 적이 없는 얌체다. 누구나 기생충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기생충 박물관 건립을 꿈꾸고 있다. 376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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