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여 년 전 신학생 시절,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에서 한 달간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중증 복합장애인들을 도와주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6명이나 되는 장애인을 씻기고, 밥 먹이고, 약 먹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다. 2, 3주 정신없이 그렇게 살다가, 느닷없이 신학생답지 않은 아주 해괴망측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이들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왜냐하면 인간 안에는 신적 속성(하느님의 모상)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신학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진리와 같은 당연한 명제였다. 하지만 인지능력, 학습능력, 언어능력은커녕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며칠 내로 그냥 죽을 수도 있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저들에게 신을 닮은 인간의 모습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저들에게도 인격(人格)이 있는가?
나름대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냥 불쌍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을 닮은 인간의 모습을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풀기 어려울 듯 보이던 이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해법은 유리문 너머 거실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에 있었다.
그 시설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나이에 상관없이)은 어떤 사정으로든 부모로부터 버려진 이들이었다. 외부에서 찾아오는 가족은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잠시 일을 보고 거실에 와보니, 웬 아줌마가 내 방에 있는 아이를 안고 음식을 떠먹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화가 잘 되도록 입으로 꼭꼭 씹어서 숟가락에 담아 아이 입에 넣어주었다. 누구인지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엄마의 표정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그 사랑스러운 눈빛에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말 그대로 번개 맞은 느낌이라고 할까!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 저것이었구나.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저 아이의 가치가 엄마 눈에는 보이는구나.' 나는 그 아이의 능력을 보았는데, 엄마는 그 아이의 존재를 보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 아이의 능력이 아니라, 나와 그 아이의 관계와 엄마가 맺고 있는 그 아이와의 관계에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아이를 키우지 못해 시설에 맡기고 한 달에 한 번씩 음식을 해서 찾아온다고 했다.(안타깝게도 그 후 몇 년 되지 않아 그 아이는 하늘나라로 갔다.)
그렇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함은 능력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말 그대로 인간은 사람(人) 사이(間)이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보자면 신이 주도하는(사랑하는) 인간과의 관계성에서 인간의 존엄한 가치가 발생되고, 인간 사이의 관계성 안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존엄하게 하는 그 관계성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요즘 우리 사회에 너무도 걱정스러운 일이 자주 발생한다.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폭행,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 만일 이러한 병리적인 현상들이 선천적 정신질환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성의 상실에서 온 비인격화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인간의 격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특히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 사이에서 함께 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나 혼자 사는 법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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