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이 착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외지에 갈 때마다 그는 불심검문 대상이 됐다. 각지고 험상궂은 인상을 주는 얼굴 생김새 때문이었다. 이 친구, 처음엔 푸념도 많이 했지만 나중엔 이골이 났는지 헌병'경찰이 눈에 띄면 신분증부터 꺼내는 버릇이 생겼다.
생김새가 성격을 좌우하는 것이 아닌데도 외모에 따른 선입견이 생기기 쉽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개 미남미녀가 캐스팅되고 악역은 못생기고 강한 인상의 연기자 몫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역발상으로, 요즘 TV에서는 외모나 지명도에 따른 편견을 배제하고 오로지 가창력만으로 승부하겠다며 출연자들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경연을 벌이는 프로그램(복면가왕)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인간의 대표적인 감각기관인 시각은 착각에 쉽게 노출되고 편견을 발생시킨다. 세계 각국 법원 앞에는 '정의의 여신상'이라는 조각상이 설치돼 있는데 흥미롭게도 대부분 눈을 가린 모습을 하고 있다. 감각기관과 감정에서 유발되는 편견을 배제하고 이성적 판단에 따라 법을 집행한다는 의미를 담은 상징조형물이다. 칼과 저울을 두 손에 들고 있는데 이 역시 외압에 굴하지 않는 추상같은 권위와 공정성을 나타낸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약간 모습이 다르다. 1995년 설치된 이 여신상은 눈가리개를 하지 않은 채 눈을 뜨고 앉아있다. 저울을 든 모습은 외국의 그것과 같지만, 다른 손에는 칼 대신에 법전을 들고 있다. 법전을 눈으로 꼼꼼히 살펴 공정하게 법 집행에 임하겠다는 한국적 콘셉트를 담았다고 한다.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눈 뜬 정의의 여신상은 오해를 불렀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실상을 공교롭고도 아이로니컬하게 반영하는 것 아니냐며 일부 호사가들은 입방아를 찧었다. 원래 조형물이란 것이 제작자의 예술적 해석과 주관이 개입되어 만들어지는 것인 만큼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정의의 여신상 중에서도 눈가리개를 하지 않은 것들도 없지 않다.
눈 뜬 정의의 여신상을 둘러싸고 애먼 논란이 생기는 것은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바닥이기 때문이다. 고위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를 몰래 선임하는 데 수십억원이 오갔다는 경악스러운 뉴스를 접하는 국민의 심정은 오죽할까. 이러다가는 차라리 인공지능(AI)에게 판결받는 게 덜 억울할 것이라는 여론마저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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