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동산동 골목길

대구 도심에는 1천 개가 넘는 골목길이 있다 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름이 됐지만, 대부분은 아무 이름이 없다. 지난 세월을 참 힘들게 보낸 노년(老年)이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라며 어릴 때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대문 앞의 좁고 긴 그 길로 남아 있을 뿐이다.

대중교통으로 도심의 회사로 출근하면서 가끔 만나는 중구 동산동 섬유회관 뒤쪽에서 구암서원쪽으로 가는 골목도 그렇다. 수십 년 동안 별다른 손길이 미치지 않아 어릴 때의 그 골목길과 거의 비슷하다. 몇몇 식당을 지나 본격적인 골목길에 들어서면 그 길이 끝날 때까지 사람을 거의 만날 수 없다. 대구 중구청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는 63채의 집이 있는데 30채가 한옥인 곳이다.

이곳에는 미장원 하나를 빼면 가정집뿐이다. 중구청이 한창 근대골목을 만들고, 구암서원을 한옥숙박체험장으로 만들 때 이쪽 골목길을 살려야 보고, 먹고, 자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청장에게 건의했던 곳이다.

일부는 깨끗하게 고쳐 번듯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와나 슬레이트 지붕에 붉은 벽돌벽, 회벽이거나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커다란 블록 벽돌 집으로 많이 낡았고 허물어진 곳도 많다. 직선거리로 치면 10여m밖에 되지 않을 넓은 길로 나서면 근대골목이다, 옛길 복원이다 해서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이곳은 재래식 화장실의 바깥 구멍을 널빤지로 막은 집이 수두룩하고 조용하다. 꽤 긴 이 길을 아는 노래의 가락을 따라 휘파람이라도 불며 걸어가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골목대장이 된 기분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이 골목이 꽤 부산스러워졌다. 몇 곳 한옥의 리모델링이 한창이어서다. 유동인구가 거의 없어 가게 입지로는 가치가 떨어질 것 같은데도 얼핏 봐도 가게가 들어설 것 같은 다소 큰 규모의 공사도 있다. 무심코 지나쳐 보지 못했겠지만, 골목길 어귀에는 이미 주차장이 만들어져 영업 중이었다.

이렇게 골목은 사라진다. 한쪽 귀퉁이가 조금씩 무너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용차가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바뀔 것이다. 몇 년을 잊고 살면, 어느새 이 골목은 근대골목 옆에서 새로운 명소가 되는 영화를 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천시장 살리기 프로젝트가 김광석 길 만들기로 바뀌면서 그랬듯, 땅값과 가게 세가 오르고 오히려 오랫동안 그 길을 지켰던 많은 사람을 핍박해 떠나게 하는 패턴이 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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