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통해 대선주자 입지 굳힌 반기문
철학 가진 정치인 쫓겨난 그 자리에
'처세의 달인' 낡은 지역주의 반복
새누리당 혁신의 기회 사라질 위기
이번 방한을 통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크게 다섯 가지를 했다. 첫째, 국민을 향해 사실상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고, 둘째, 새누리당 안팎의 인사들을 만나 여권 대선주자로 입지를 굳혔고, 셋째, JP를 만나 충청권 대망론의 적자로 승인받고, 넷째, 안동을 방문하여 '충청-TK 연합'을 집권전략으로 제시했으며, 대통령의 순방외교를 찬양함으로써 최고 권력자의 눈도장을 받았다. 그는 '확대 해석'을 말아 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렇게 '축소 해석'을 하기엔 그의 행보가 던지는 메시지는 너무나 뚜렷했다.
반기문이라는 주자가 대통령과 여당 내의 친박 세력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로 여겨지겠지만, 그 줄이 과연 튼튼한 줄인지, 썩은 줄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실 반기문의 스토리는 '신화'가 되기에는 여러 면에서 부실하다. 제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자. 당시 차기 사무총장은 어차피 한국 몫이었다. 원래 그 자리에는 다른 인물이 내정되어 있었으나 반기문은 그의 유고로 후보에 올랐고, 선출되는 과정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균형외교로 어느 나라도 한국인 총장에 '비토'를 놓지 못하게 했고, 김선일 사건으로 외무장관 경질 요구가 있을 때에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끝까지 그를 지켜줬으며, 굳이 필요하지 않은 아프리카 순방일정까지 마련해 그에게 표를 모아주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찬양하는 그분이 정작 자신을 위해 아프리카 순방까지 해준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는 참석도 안 했으며, 봉하마을 참배도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은 후에야 면피용으로 뒤늦게 했다.
직무라도 훌륭히 수행했다면 '신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직무수행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마냥 차갑기만 하다. "최고로 아둔한 역대 최악의 총장"(이코노미스트), "유엔을 '무의미한' 단체로 만든 총장"(포린 폴리시), "유엔의 투명인간"(월스트리트저널), "유엔을 심각하게 약화시킨 총장"(가디언), "놀라울 정도로 유명무실한 인물"(뉴욕타임스), "유엔을 총체적으로 무의미한 집단으로 만든 총장"(워싱턴포스트).
이런 평가를 받으면서도 10년 연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5개국이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무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직무평가 항목 중 '강자에 대한 진실성'에서 그는 낙제점인 3점을 받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강대국과의 갈등도 마다 않은 전임 총장 코피 아난과 달리 자리 보전을 위해 강대국 눈치만 봤다는 얘기다.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결국 '처세에는 능해도 철학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가 괜히 '기름장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대선 후보로 끼어드는 방식도 과연 '기름장어'답다. 총선 패배로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이 정치적 타격을 입자, 그 틈을 타 아주 매끄럽게 파고들었다. 그가 큰 뜻을 이루는 데에 성공한다 해도, 그의 처신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고, 나중에 얻을 평가 역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가 방한하여 던진 메시지를 보라. '대통령의 낙점을 받아 여당의 대선후보가 되어 충청과 TK의 연합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 내용도 없잖은가.
여당에 인물이 없는 게 아니다. 최근 유승민 의원은 새로운 보수의 덕목으로 '공화주의'를 제시하며, 그것을 "공공선을 담보하는 법의 지배 안에서 시민들이 다른 시민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는 정치질서를 세우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철학'을 가진 정치인은 쫓겨나고 그 자리에 두루두루 무난한 '처세'의 달인이 들어와, 충청-TK연합이라는 낡은 지역주의 행태를 반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한국정치 최대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은 4'13 총선을 통해 새누리당에 보수 혁신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그 기회도 결국 기름장어의 승천 드라마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슬픈 일이다. 특히 보수에게는 더 슬퍼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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