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 청문회법'이 지난달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재의 요구)로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박 대통령은 멀리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19대 국회 종료 이틀을 남기고 권한을 행사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박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며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지만, 19대 국회는 이를 다시 의결할 시간이 없었다. 국회가 임시회를 열기 위해서는 3일 전에 소집공고를 내야 하지만, 소집 전에 19대 국회가 끝난 판이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을 재의결할 기회를 원천 봉쇄한 셈이다.
국회가 본회의 의결을 거쳐 '여야 합의로 국정현안에 대한 청문회를 상시로 열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의 공포를 정부에 요청한 것은 정당하다. 대통령이 법률안에 이의가 있다고 보고 정부로 이송된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한 것 또한 대통령으로서 정당한 권한 행사다.
하지만 문제는 거부권 행사 방식이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모두 각각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했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정당하게 보이지 않는다. 국무회의는 통상 격주로 화요일에 연다. 상시 청문회법이 지난달 23일 정부로 이송됐기 때문에 거부권 행사는 다음 날인 24일에 가능했다. 또 검토할 시간이 촉박하다고 여겼다면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귀국한 뒤인 이달 7일에도 충분히 가능했다.
정부가 굳이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중인 상황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대통령은 19대 국회 종료 이틀 전 전자결재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국회의 재의 과정을 아예 거치지 않고 법안을 폐기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입법부를 철저히 무시했다.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법안 내용을 봐도 그렇다. '행정부의 정상 업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은 지나친 확대 해석으로 비친다. 정부에 어깃장을 놓기보다는 박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해온 '일하는 국회'로 만들고, 국정을 투명하고 적법하게 집행하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여당의 4'13 총선 참패 한 달 뒤인 지난달 13일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 지도부 간 회동의 주 화두는 '소통과 협치'였다. 그리고 5일 뒤 5'18 기념식장에서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가방침은 협치에 찬물을 끼얹었다. 5'18 기념 노래를 합창 대신 제창한다고 정부 위신이 떨어지거나 기념식의 정신이 훼손될까.
박근혜정부가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지 않고, 합창과 제창의 지엽적인 논란에 갇혀 있는 모습은 협력과 화합의 정치(協治)보다 편협한 정치(狹治)에 더 가깝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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