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오후 9시에 어둠 속을 달렸다. 시끄러운 열차 소리에 잠을 깰 무렵 아침 햇살에 비친 대지는 이제 막 초록빛을 머금기 시작했고, 깊은 겨울잠을 깬 자작나무는 하얀 속살을 아직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끝이 안 보이는 평원, 습지, 자작나무 숲의 반복되는 열차 창 밖 풍경이 지겨워질쯤에 횡단열차는 꼬박 11시간을 북쪽으로 달려 아무르강(중국명 黑龍江)이 도도하게 흐르는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다시 러시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바이칼호의 관문인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 4천㎞ 떨어진 남동시베리아에 위치한 이르쿠츠크는 아름다운 풍경과 건축물들, 그리고 데카브리스트들이 꽃피운 서유럽풍의 문화도시로 '시베리아의 파리'라 일컫는다.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 도심에는 고층 건물이 드물다. 서울 시내 행선지가 그대로 적힌 시내버스가 도심을 운행하고 있다. 전차와 전기버스, 시내버스, 승용차가 도로를 함께 달리고 있다.
시베리아 도시 중 유일하게 350여 년이란 긴 역사를 간직한 이르쿠츠크는 17세기 모피를 구하려 들어온 코사크 족이 정착하면서 원주민의 문이 열렸다. 제정러시아 압제가 극에 달한 19세기에는 유배되어온 데카브리스트(1825년 12월 차르에 대항하여 근대적 혁명을 꾀했던 청년귀족 장교들)에 의해 유럽의 문화가 전파되면서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귀족 출신이었던 데카브리스트 청년 장교의 아내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귀족으로 편안한 삶을 살기보다 남편을 따라 혹한의 유배지인 시베리아를 택했다는 순애보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시내 키로프 광장 인근 즈나멘스키 수도원에서 일부가 영면하고 있다.
수도원 앞에는 알렉산드르 코르챠크 제독의 동상이 서 있다. 1917년 일어난 러시아혁명 당시 반혁명 백군을 이끌고 볼셰비키 적군과의 싸움에 패배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화 '제독의 연인'의 실제 주인공인 그를 이 도시인들은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
러시아의 주요 도시에 있는 무명용사를 위한 '영원의 불꽃'이 이르쿠츠크에서도 꺼지지 않고 365일 타오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이 지역 출신 5만 명의 넋을 기린 곳이다. 전승절(5월 9일)이 지났지만 주변에 추모객들이 헌화한 카네이션이 가득 놓여 있다. 광장 한곳엔 붉은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연인들의 이름과 소원이 새겨진 자물쇠가 가득 걸려 있는 앙가라 강변의 작은 광장에는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 주역인 황제를 기억하기 위해 철도 준공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이르쿠츠크에도 항일운동의 역사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이르쿠츠크국립대학 도서관은 고려공산당 창당대회가 열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구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부활한 뒤 되살아난 러시아정교회는 시내 곳곳에 돔형 교회를 두고 있다. 가톨릭과 달리 교회 안팎에는 성상과 의자가 없었다. 대신 성상화 '이콘'이 정면과 기둥, 천장에 그려져 있다. 인간의 시각이 아닌 신들의 시각으로 그려진 성상화는 원근감 없이 얼굴이 두드러졌다. 앞에서 신자들이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승'전'나무'의 생활문화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에서 목재가 많이 생산되는 곳 중 하나다. 이르쿠츠크 산림 면적은 969만㎢로 남한 면적의 7배에 달한다. 쭉쭉 뻗은 자작나무와 적송은 철분이 많은 타이가에 잘 적응했다. 평균 수령이 80년이 넘는 적송은 울진의 금강송보다 키가 더 커 보였다.
나무가 흔하다 보니 쓰임새도 많다. 19세기 카작군의 목조 건축물들을 재현한 탈치 야외박물관은 나무를 이용한 생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목책, 망루, 정교회 건물, 가옥, 창고뿐만 아니라 지붕도 나무로 만들어졌다. 심지어 맷돌도 나무로 만들어 사용했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아기자기한 수공예품도 관광상품으로 유명하다.
동토의 추위를 이기기 위한 땔감 역시 자작나무다. 껍질은 불쏘시개로, 목재는 화목으로 쓴다.
시내 대부분 건축물도 나무로 지어졌다. 그러나 화재에 취약해 주정부청사 등 근대에 들어 석조 건축물로 바꿔 짓고 있다고 한다. 목조 가옥의 창문은 다양하게 장식돼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차가 다니는 도로의 다리도 통나무로 만들어졌고, 바이칼호 선착장 옹벽도 나무로 만들어졌다. 새로 정비한 130번가 나무집 마을 입구엔 나무로 만든 솟대가 서 있다. 나무는 이 도시 생활도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민족의 시원이자 '샤머니즘의 고향' 바이칼호수
이르쿠츠크에서 70㎞ 떨어진 바이칼 호수는 수평선을 보면 바다로 착각할 만큼 장대하다. 표면적이 우리나라 남한의 3분의 1과 맞먹고 수량은 미국 5대 호수를 합친 것보다 많아 세계 담수량의 20%를 차지하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다.
초승달처럼 생긴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호,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를 뜻한다.
오염되지 않은 물속은 희귀한 생명들의 보고다.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이 서식하며 철갑상어, 오물 등 2천500가지 어종의 터전이다. 336개의 하천과 강이 바이칼 호수로 유입되고 오직 앙가라강으로만 흘러가 북극의 카라해로 빠져나간다.
1925년 육당 최남선 선생이 '불함문화론'을 전개하면서 바이칼 호수는 한민족의 시원으로 꼽힌다. 일제 식민사관(植民史觀)에 맞선 한국 고대문화의 세계사적 위치를 밝히고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뿌리 찾기인 셈이다. 특히 호수 주변에 자리 잡은 부리아트족의 문화는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서낭당과 비슷하게 소원을 비는 장소인 세르게, 장승, 솟대, 고수레 풍습 등은 우리 민속신앙의 DNA와 닮았다.
지구 상에서 햇빛이 가장 강한 바이칼 호수에 도착한 첫날은 화창했다. 내리쬐는 햇살은 맨살을 이내 태우기에 충분했다. 풍부한 일조와 맑은 물은 호수 바닥을 훤히 볼 수 있게 했다. 눈이 시린 에메랄드 빛 수평선 너머 산허리춤엔 겨우내 쌓였던 눈이 아직도 만년설처럼 햇살에 반짝였다. 다음 날 호수 주변 마을 리스트비얀카를 찾았을 땐 호수 날씨가 급변했다. 출항한 유람선이 흔들릴 정도로 물결이 거셌다. 유람선 선착장에 가득 묶여 있던 무사안일을 비는 천조각인 '자아라' 의미를 비로소 알았다. 변화무상한 호수를 생활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체르스키 전망대에서 바라본 샤먼의 원류인 바이칼호의 풍경은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이 주는 벅찬 감동 그 자체였다. 앙가라강으로 흘러가는 물길은 어디가 호수이고 어디가 강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바이칼의 명물 생선 오물(Omul)은 맛이 아주 담백해 낯설거나 거부감이 없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사람에게 훈제는 보드카의 안주로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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