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항상 지속된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강 아래로 물이 쉼 없이 흐르는 것처럼 일제강점기에도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통합한 억압의 시간 동안에도 사람들은 아침이면 일어났고, 밤이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은 사랑을 했고, 때에 따라서는 사랑을 배신하기도 했다.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향해 정직하게 나아가기도 했지만 때로는 빠른 성공에 쉽게 회유당하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던 삶의 모습이 일제강점기에도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상의 작은 틈새로 시대의 정조가 조용히 스며들었고, 그 시대의 정조가 일상에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川邊風景'1936)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일상적 삶을 다룬 소설이다. 일제강점기 지금의 서울, 즉 경성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일본인 거리와 조선인 거리가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 청계천 남쪽 명동과 충무로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리가, 그리고 북쪽 종로를 중심으로 조선인 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소설 제목인 '천변풍경'의 천변(川邊)이란 바로 청계천변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설은 청계천 북쪽 천변 빨래터 풍경에서 시작한다. 특별한 주인공 없이 이발소 견습생, 한약국집 사환, 법무사, 금 브로커, 카페 여급, 아이스크림 장사 등 청계천변 주변 수많은 조선인들이 전체 50장으로 구성된 소설의 각 장을 채운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비루하고 소소한 일상으로 이루어진 삶의 조각이 모여서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조선 삶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소설에서는 약간의 경제적 여유라도 있는 남성들은 첩을 두고 도박을 하거나 '평화'라는 이름의 카페에 들러서 일본식 이름을 단 조선인 여급들과 일본어로 대화하며 소일한다. 여자들은 일부다처제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거나, 어린 남편이 어머니 품만 찾다가 급사하는 바람에 처녀 과부가 되어 있다. 1936년 경성 청계천변에 사는 조선인 누구도 평화롭지 않았으며, 모두 무기력하고,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박태원이 '천변풍경'에서 그려낸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의 풍경은 그랬다.
소설 속 인물 그 누구도 일본제국의 폭력적 힘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무기력함의 기저에 일본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특히 소설이 발표된 1936년은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하기 겨우 1년 전으로 사회 전반에 광포한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결코 평화롭지 않은 때였다. 그렇다면 1930년대 말, 변화와 희망과 개혁을 포기한 채 일본의 억압을 운명처럼 수용했던 그 수많은 조선인들은 식민지 현실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었던 것일까.
적어도 박태원은 '천변풍경'의 창작을 통해서 일본제국뿐 아니라, 수많은 조선인들에게도 그 책임을 묻고 있었던 듯하다. 나라와 사회와 조직이 처한 냉엄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일상적 쾌락과 이익을 좇는 자들에게 미래가 주어질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식민지 경험이 우리에게 준 중요한 교훈이 아닐까.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