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사진판을 주렁주렁 걸고 "사진~ 찍어요~!"를 외치며 사진사가 골목골목을 다녔다. 어떤 아저씨는 배경을 그린 판때기를 수레에 싣고 다녔다. 산봉우리 몇 개와 그 위에 떠있는 해, 나무 따위를 그린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방천지가 푸른 산야인데 왜 그렇게 저급한 배경에 열광했던가 싶다. 사진사가 오면 순식간에 꼬맹이들이 조르르 몰려들었다.
배경이고 포즈고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았다. 그래서 얻은 사진 속 아이들은 꾀죄죄한 옷을 입고 낡은 신발을 신고 있다. 흑백사진 속에서도 머리에 앉은 쇠똥자국, 얼굴에 희끗희끗 번진 버짐이 보였다. 사진사가 손짓한다. "너 고개 좀 들고, 오른쪽 너 더 붙어 서." 하나 둘 셋 찰칵! 눈을 크게 떴건만 한 아이는 놀란 토끼눈이고 옆의 아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참 오래된 얘기다.
달성공원엘 가면 '총천연색' 사진들을 붙인 커다란 사진판을 옆에 세워두고 놀러 온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드립니다"라며 따라다니며 강권인지 애원인지를 한다. 공원에 왔으므로 당연히 나들이옷을 입었고 기분도 좋다. 자, 사진 한 판 찍을까. 단체사진을 찍고 내친김에 폼 잡고 독사진도 찍는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 흔치 않았다. 그래서 동네사진관은 환갑잔치나 돌잔치에 출장을 다녔고 각종 증명사진을 찍느라 성업 중이었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1980년대 초,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카메라를 샀다. 아이의 매순간을 담아두겠다고 열심히 찍어댔다. 집 근처 망우공원에 갔다. 두 살 위 누나는 빨간 원피스를 입었고 돌 지난 지 며칠 안 된 동생은 돌날에 입었던 도령 한복을 입었다. 그 사진이 아직도 큰아이 방에 있는데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위의 두 아이, 어쩌면 저리도 예쁠까. 두 아이의 저 시간은 순간이며 영원이다. 세상 어딘가에서 저 둘은 지금도 그때처럼 서로 화음을 맞추며 삶이란 이중주를 연주하고 있겠지. 조용하게 또는 열정적으로.
1984년 小史
▷한강 대홍수 189명 사망=1984년 9월 1일 새벽부터 중부 내륙을 기습한 폭우로 189명이 사망하고 46명이 부상했다. 재산 피해는 1천300억원에 달했다.
▷한국-중국 스포츠 교류=한-중을 가르고 있던 죽의 장막이 스포츠 교류로 열렸다. 한국 테니스 선수단이 2월 중국에 첫 입국해 데이비스컵 예선전을 가진 뒤, 중국 농구팀과 수영팀이 서울에 들어왔고, 10월엔 상해농구대회에 한국팀이 참가했다.
▷판문점 소련인 망명=소련인 마투조크 씨가 1984년 11월 23일 판문점 관광 중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탈출했다. 북한 경비병들의 추격으로 발생한 쌍방의 총격전으로 국군 1명이 전사하고 북한군 2명이 사망했다.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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