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무조건 300만원?

스위스에서 18세 이상의 국민에게 300만원, 미성년자에게 78만원의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시행했으나 76% 이상이 반대해 부결됐다.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으나 스위스 국내에서는 반대 여론이 높아 찬성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 방안은 스위스의 한 시민단체가 13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가 성사됐으며 스위스 정부는 기존 정부 예산의 3배 이상이나 되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는 점을 이유로 반대해 왔다.

국민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논의는 스위스뿐만 아니라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로봇과 자율 자동차 등이 곧 실용화되면서 대량 실업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 근거였다. 갈수록 커져가는 소득 불평등 문제도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스위스의 예에서 실업자들에게 매월 300만원을 고정적으로 주기 위해 훨씬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취업자들과 부자들이 당연히 반대하는 현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쟁하고 노력한 만큼 부를 챙기는 자본주의의 원리가 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 심해진 경쟁 속에서 1등을 차지한 기업이나 개인만이 부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부의 일방적 쏠림으로 많은 평범한 이들이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거나 예기치 못한 기술의 발전으로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으며 앞날이 불투명한 삶을 살고 있다. 일 없이 빈둥대며 사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제공하는 데 대해 논란이 따르겠지만 부자들의 몫을 덜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논의를 막을 수는 없게 됐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의 실업 문제와 소득 양극화는 매우 심각해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원을 잘 배분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정치가 그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경제 민주화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졌고 일자리 대책도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밀어붙이려고만 한다. 국회의원들도 말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좀 더 근본적이고 정밀한 검토를 거친 대책을 마련해 국민적 동의를 얻어 시행해야 하는데 정부와 국회는 그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고 화가 난다. 다만, 김종인, 유승민, 김성식 등 소속 정당을 떠나 일부 국회의원들이 관련 정책 연구에 나서기로 한 점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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