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껏 불었다. 눈을 부릅뜨고 볼이 팽팽하게 부풀도록 바람을 불어넣는다. 급기야는 귀까지 먹먹해지도록 힘을 준다. 풍선이 둥그렇게 커진다. 그만, 그만해야지. 아니야, 좀 더 조금만 더 욕심을 내는 순간 펑! 풍선은 터지고 만다. 아이 깜짝이야! 앞에서 풍선을 불던 아이도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도 화들짝 놀란다.
새 풍선을 입에 물고 이번에야말로 조심조심 불게 된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또 터질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어떠랴. 아이는 생각한다. 요만큼이면 되었다. 더 나가면 풍선이 터진다. 과유불급이란 사자성어는 몰라도 그칠 줄 아는 지혜가 생긴 게다. 풍선 하나로도 아이는 배우면서 자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완급을 조절할 줄 알고 경중을 구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풍선을 불려고 공기구멍을 입에 물었을 때 훅 끼쳐오던 고무 특유의 냄새를 기억한다. 그 냄새는 까마득한 유년의 골목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누가 더 크게 부나 내기도 했고 풍선이 없는 친구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구멍가게나 문방구에 가면 풍선들이 나란히 꽂힌 두꺼운 종이판을 주렁주렁 걸어놓았었다. 겨우 한 개를 사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둥근 것 긴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풍선을 길게 불어서 이리 꼬고 저리 돌려 토끼도 만들고 쥐도 만들고 꽃도 만들었다. 한 개의 풍선을 불었다 풀었다 하며 오래 갖고 놀았다. 잔뜩 부푼 풍선을 친구의 귀에다 몰래 갖다 대고 '푸르륵' 바람을 쏘고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달아나는 개구쟁이도 있었다. 1980년대 얘기는 아니다. 좀 더 오래된 풍경이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무슨 행사 때면 풍선을 빨주노초파남보로 하늘 가득 날리기도 하고, 자동차 트렁크를 열면 풍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서 연인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풍선은 더 이상 아이들만의 장난감도 아니고 이젠 귀한 것도 아니다. 아무튼 풍선은 기분 좋은 날에 기분 좋게 입으로 부는 게 제 맛이다. 지금, 풍선 불어보고 싶다.
◇ 1986년 小史
▷아시안 게임 개최=1986년 제10회 아시아 종합 경기대회가 서울에서 '영원한 전진'(Ever Onward)이라는 표어 아래 열렸다. 27개 국가 4천800여 명의 아시아 선수들이 25개 종목에 걸쳐 참가했다.
▷서진 룸살롱 사건=유흥가를 무대로 한 조직폭력배 사이에 세력 확장을 두고 1986년 8월 14일 싸움이 벌어져 20대 청년 4명이 잔인하게 살해됐다. 사건 관련자 4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신상옥 부부 북한 탈출=1978년 납북된 영화 배우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북한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탈출해 미국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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