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경기는 지역 전체의 경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주택 경기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든다면 지역 경기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포항의 아파트 경기 침체는 그 여파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는 현 상황을 두고 '거래절벽'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줄도산할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 아파트 '거래절벽', 구매자는 급매만 볼 뿐
지난 5월 아파트 경기를 온몸으로 겪은 포항 부동산 업계는 '거래절벽'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북구의 경우 지난 5월 장성동에서 거래된 아파트는 불과 5건에 그쳤다. 전달인 4월 29건의 거래가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거래량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이는 장성동뿐 아니라 양덕동에서도 나타났다. 양덕동은 지난 4월 17건이 거래된 데 비해 5월 단 4건만이 거래됐다. 우현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4월 22건이 거래됐지만 5월 마지막 날까지 거래된 아파트는 단 2건이 전부였다. 흥해읍은 5월 14건이 거래되면서 그나마 지역 중 가장 많은 거래량을 보였지만 대부분은 신축이 아닌 노후 아파트였다.
남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효자동에선 4월 6건, 5월 2건으로 거래량이 반 토막 났으며, 이동은 5월 거래 실적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연일읍은 4월 21건의 거래량에서 5월 5건만이 거래돼 바닥을 쳤다. 그나마 오천읍에선 4월 51건, 5월 26건이 거래돼 전달의 겨우 50%를 넘겼지만, 앞으로 '거래절벽'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구매자들은 신축 아파트 분양권보다는 시세보다 싸게 나온 급매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최근 포항에서 거래된 매매를 살펴본 결과 시세보다 2천만~3천만원 정도 싸게 나온 아파트(급매)가 주로 거래됐다. 앞으로 2, 3년 뒤에는 아파트 가격이 5천만~6천만원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3만여 호에 달하는 공동주택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와 맞물린다. 포항에서는 ㈜하나자산신탁이 남구 대잠동에 짓는 1천567가구 규모의 '자이' 등 대단지 아파트 19곳이 건설 중이며, 흥해 학천'초곡 등에 3개 업체가 아파트 사업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또 우현동 등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내에도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아파트가 20여 개에 달한다.
◆왜 '거래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나
공급과잉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에 따르면 2년 전부터 포항지역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 분양은 이미 25만 호를 넘어섰다. 실수요자 개념으로 놓고 보면 공급이 초과한 상태라는 것이다.
또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은 경기 활성화나 인구 유입으로 실수요가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최근 2, 3년 동안 인구가 크게 늘거나 경기가 활성화될 만한 조건이 포항에 없었다. 그나마 지난해 말까지 아파트 가격이 꾸준히 상승했던 원인은 KTX 포항역과 포항~울산 고속도로가 잇따라 개통되면서 경기 활성화 기대감을 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돈을 번 것은 기대감을 잘 이용한 일명 '떴다방'뿐이었던 것으로 한국은행은 분석하고 있다.
이제는 '떴다방'도 자취를 감췄다. 포항 아파트 거래가는 2010년부터 3년간 가격이 올랐으며, 2013년이 되면서 거래량은 소폭 줄었지만, 거래가는 계속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서 조사된 실제적 거래 주체는 2010~2012년 100건 중 30~40건이 울산 등 외지인이었다.
2012년 이후에도 가격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외지인 거래 비중이 줄기 시작해 100건 중 10건 이하, 즉 10%도 채 안 될 정도로 떨어졌다. 2012년까지 아파트를 샀던 사람들이 2015년까지 가격이 오를 동안 시세차익만 챙겨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김진홍 부국장은 "개발 호재에도 포항 인구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며, 일명 '떴다방'이 상황을 잘 이용해 아파트 가격을 올리고 돈을 챙겼다. 그래서 분양가가 올라갔던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으로 아파트 대출을 할 때 원리금을 함께 내야 하는 부담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거치 기간 없이 원리금을 상환해야 해 주택 1개만 가진 사람은 큰 부담이 안 되는데, 투자 개념의 사람들은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부동산 업계, 줄도산 위기
올 초 포항 아파트 매매가 '거래절벽' 조짐을 보이자 800여 개가 넘는 공인중개사무소 중 10%에 달하는 사무소가 문을 닫았다. 또 남은 사무소 중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는 곳은 '개점휴업'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직종을 바꾸거나 문을 닫을 준비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양덕동에는 97곳의 공인중개사무소가 있었지만, 이 가운데 4곳이 영업을 정지했으며,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본업이 아닌 부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물량이 터져 나오는 3년 후가 되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했다.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매물로 내놨을 때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 등의 요인에 매물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신규 수요자 격인 신혼부부마저도 3포(연예, 결혼, 출산) 세대 등 영향 탓에 점점 기대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4월만 해도 그나마 참을 수 있었지만 5월이 되면서 거래가 엄청나게 떨어져 도저히 사무실 운영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며 "현재 주변 공인중개사 중에는 전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경기 침체 탈출이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장기화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택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하면 토지매매'개발행위 등 다른 부동산사업도 전혀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인구 유입과 경기 부양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활성화'인구 증가 방안 찾아야
한국은행 포항본부는 부동산 등 실물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책으로 우수한 연구역량을 갖춘 연구기관, 대학 등에서 배출된 우수 인력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른 지역으로부터도 필요한 청년인력이 유입돼 도시 전체의 인구가 증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인력이 기반이 된다면 포항이 요구하는 인구 문제와 경기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포항시의회 안병국 건설도시위원회 위원은 "낙후된 지역은 대형 건설사 등에서 자본이 전혀 투자되지 않다 보니 계속 낙후될 수밖에 없고, 인구도 점점 고령화되면서 젊은 층들은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을 찾아 떠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교육'공원 등 도시 기반시설이 있지만 낙후된 지역인 장성'두호'양학동 등에서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데 행정력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덕동 A공인중개사무소 소장은 "각 시'군마다 인구 증가 등을 목표로 투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구도시보다 신도시가 깨끗하고 살기 좋으니까 이것을 홍보해 인구를 뺏어오겠다는 심산"이라며 "포항은 도청도 안동으로 가고, 만들어놓은 것은 영일만산업단지, 블루밸리 등인데 국내 업체의 유치가 어렵다면 외국자본에라도 기대 인구를 늘려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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