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가늠

이병률(1967~ )

종이를 깔고 잤다

누우면 얼마나 뒤척이는지 알기 위하여

나는 처음의 맨 처음인 적 있었나

그 오래전 옛날인 적도 없었다

중략

그 언젠가 이 세상에 돌아왔을 적에

그 언제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달아났을 때

이 땅의 젖꼭지를 꼭 쥐고 잠들었다

얼마나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는 것은 인기척이다. 한 사람에게 조금만 머물러도 인기척이 남는다. 사람이 사람을 지나가며 남기는 것은 악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자리는 설움이 되기도 하고, 슬플 때마다 자신에게서 떠오르는 인기척이 되기도 한다. 하늘은 그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와 체온이 되고, 흐느낌은 흉곽 속에 사는 새떼들의 지저귐이 된다. 당신은 인기척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당신은 사랑을 할 때 없는 길에도 인기척을 만든다. 실패를 보여주고라도 곁에 들면 그 사람을 지나가는 중이라며 자면서도 눈물을 흘린다. 가벼워지기 위해서 그 사람 위에 지푸라기를 남기던지, 초승달을 남기던지, 들녘을 남기던지, 하늘에는 눈이 보이고, 종이배는 기슭에 닿을 때까지 출렁이고 흔들린다. 가늠을 하면서 무엇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래 헤매고 돌아왔을 때 머리칼 위에 흰 눈이 내려 가득 쌓이고 우물 속에서 죽은 난쟁이가 발견된다. 눈물과 예감이 사이좋게 인기척을 나누어 가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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