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문학노트] 그랬니? 그랬구나-김소연의 '백반'

그 애는/ 우리, 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놓았다// 죽지 못해 사는 그 애의 하루하루가/ 죽음을 능가하고 있었다// 풍경이 되어가는 폭력들 속에서/ 그 애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었다/ 그 애는 미워할 힘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중략) 그랬니…/ 그랬구나…// 우리는 무뚝뚝하게 흰밥을 떠/ 미역국에다 퐁당퐁당 떨어뜨렸다// (중략)// 그 애의 숟가락에 생선 살을 올려주며 말했다/ 우리, 라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는/ 마지막 사람이 되렴// 내가 조금씩 그 애를 이해할수록/ 그 애는 조금씩 망가진다고 했다/ 기도가 상해버린다고

(김소연의 '백반' 부분)

김소연이라는 시인의 존재를 안 지는 오래되었다. 10년 전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는 시집에 실린 '그림자'에 대한 글로 그녀를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것이 안 게 아니었다. 그녀가 시인이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사실 그 시집에 실린 그녀의 시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언젠가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산문을 읽은 사람은 시를 읽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단지 '세상 모든 모서리를 확대시키며 해가 진다'(김소연 '그림자論' 첫 부분)라는 한 문장에 말하자면 꽂혔다. 해가 진다는 사실이 모서리를 확대한다는 의미를 지니다니. 사물에 대한 오랜 탐색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내 개인 블로그에 낙서도 했지만 오래 잊어버렸다.

최근 그녀가 쓴 '마음사전'이라는 산문집을 읽었다. 글에 끌리면 그 사람에 바로 끌려 들어가 버리는 나의 어리석은 버릇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음사전'에서 말한 '다가갈까' 고민하는 나이도 아니고, '기다릴까' 하는 연배도 아니고, 이미 '지켜보는' 나이를 넘었는데 솔직히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따뜻하고 명쾌했다. 그녀의 모든 시집을 구해서 읽었다. 시라는 장르가 지닌 깊이에 완전히 다가갈 만큼 깊이가 모자라는데도 시 각 편에 빠져들었다. 대부분 그녀의 시는 따뜻했다. 시에 등장하는 사물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도 따뜻했다. 산문에서 이미 데워진 그녀에 대한 마음 때문이리라. '백반'이란 시를 골랐다. '백반'은 시인의 2013년도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 실린 시다.

'수학자의 아침'은 그녀가 만나는 일상들로 가득하다. '그늘, 아침, 장난감, 평택, 백반,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열대어, 망원동, 의자, 우편함' 등등. 추상적인 대상을 난해한 수사로 비꼬면서, 소위 튀는 최근의 시들 속에서 그녀의 시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녀도 어느 인터뷰에서 "유독 귀가 기울여지고 시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신음이거나 절규, 비명이거나 기도 같은 것과 유사한 데가 있었어요. 횡설수설과 울먹임 사이에 존재하는 말들이었는데, 시집 원고를 정리하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어요. 소용이 없어서 다행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지상의 모든 지친 말들이 잠시 멈추고 잠시 휘발되는 자리에 이 시집이 조용히 놓여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슬프기도 하다.

시 '백반'에 나타나는 '그 애'는 누구일까? '풍경이 되어가는 폭력'이란 표현에서 어떤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 정도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미 풍경이 되어가는 폭력 속에서 죽지 못해 사는 그 애의 하루에 '우리'라는 마음이 나타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를 지탱하고 있는 건 미워하는 힘이었다. 아이를 이해하면 할수록 망가지는 안타까움. 여기까지 읽으니 '그 애'는 그 애만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대상들, 그게 생물이든 사물이든 '그 애'가 될 수 있었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대상은 아프니까. 결국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은 '그랬니?' 하는 따뜻한 질문과 '그랬구나' 하는 공감. 갑자기 어느 인터넷 기사에서 본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생각났다. 시옷으로 시작하는 낱말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대답한 것이. 그래도 '그랬니?' 하는 질문과 '그랬구나' 하는 공감은 어떤 사물보다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렇게 쓰고 있는데 뒤통수가 자꾸 가렵다. 그게 아니라고 자꾸 꾸짖는 시인의 나지막하지만 강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며칠 지나면 이제 그녀를 직접 만난다. 꼭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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