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멘토 모리-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가작

차량 접촉사고를 세 번이나 냈다. 지난 달포 사이의 일로 다행히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내심 매우 당황스러웠다. 처음은 무디어진 내 주의력 부족 탓이거니 했지만 두 번, 세 번 거듭할수록 '노경(老境)의 빨간 경고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고는 곧 죽음의 전주곡일 수도 있으니 자신을 돌아보는 한 계기가 되었다.

흔히 사람의 일생을 생로병사(生老病死)라 요약해서 말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엄연한 대자연의 순리를 감히 거스를 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삶의 알파와 오메가가 생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한 생각들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치켜든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남긴 유명한 묘비명이다. 죽음을 예견하면서 어쩌지 못한 현실의 짙은 풍자와 위트의 대가다운 해학이다. 잠깐 세상에서 허둥대다가 어느새 맞게 되는 죽음, 인생의 아쉬움을 극명하게 깨닫게 해준 명언이 아닌가. 정곡을 찌르는 명쾌함과 함께 뇌리에 동공이 뚫린 듯 싸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비켜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이 닥쳐온다는 사실을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기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적막한 현실을 정면대치해서 의문을 풀려고 하지 않으며, 그것을 철학가나 종교가들의 몫이거나 그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한다. 삶의 문턱에서 서성이다가 가을에 떨어지는 한 낙엽처럼 삶이 흩어져 떠나갈 뿐이다.

근간, 이름 있는 노 정객이 부인의 상(喪)을 당했다. 그에게 만년 이인자라는 꼬리표가 붙긴 했으나 정치의 중심에 서서 한 시대를 구가하던 사람이었다. 정승의 상가이니 옛 속담대로 전'현직의 여'야를 막론한 국내 정치인들과 한때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외국의 조문객들까지 찾아와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는 많은 비난과 지탄의 화살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잘 해왔다. 그러한 그가 아내의 죽음 앞에서 노쇠한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술회했다. '모두 허업(虛業)이었다.' 이에 나름의 정치에 뜻을 두었던 또 한 다른 분이 '지난날은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라고 화답했으니 역시 엄숙한 죽음 앞에서 한 깨달음을 공감하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그들은 최고의 권력을 향해 부나비처럼 몸을 불살랐다. 원대한 꿈을 획책하다가 권력의 회오리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제 늦은 소회가 그렇듯, 넓은 초원에 붉게 잦아드는 해를 바라보면서 자연의 순리에 엎드린 노쇠한 한 마리의 맹수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 속에 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으니 삶의 지나친 욕심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인생의 가을 속에 아직 미련이 남았던가. 노욕(老慾)이라는 헛된 꿈으로 지난 두 해 동안 나 역시 심한 곤욕을 치렀다. 그 방면에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자의 감언이설에 혹하여 건설업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노가다 집단의 험한 복마전 같은 틈바구니를 헤쳐 나오기에는 턱없이 내 능력이 부족했다.

막가파식의 술수가 난무했다. 불법이 횡행하는 수렁에서 헤어 나오려 애쓰면 애쓸수록 그 속에 더욱 빠져드는 참담한 처지였다. 순진했던 지난날의 화학 기술자의 순수했던 자존심은 여지없이 멍들고 처참하게 찢겼다. 결국, 소송에 재판까지 많은 물질적 손실이 그 대가로 남게 되어 큰 자괴감을 깨닫게 되었다. 만신창이의 패잔병 신세였다.

솔잎만 먹어야 할 송충이가 떡잎에 군침을 흘리고, 백로는 아니었으되 까마귀 싸우는 골의 썩은 고기를 넘본 허물과 무엇이 다르랴. 제 분수를 깨닫지 못함이 주는 교훈으로 물질보다 더 큰 정신적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나마 깨닫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옛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개선장군이 시가행진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이 말을 크게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우쭐대지 마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삶의 교훈을 일깨워주는 개선식의 당시 풍습이었다고 한다.

또한 나폴리 박물관에 가면 폼페이에서 발굴된 같은 제목의 그림이 있다. 균형을 의미하는 측량 자(尺) 밑에 죽음의 의미인 해골을 중심으로 양팔이 있으니, 한쪽은 부귀와 권력을 상징하는 왕관에 황제의 보라색 옷, 다른 한쪽은 거지의 지팡이와 누더기가 매달려 있다. 이천 년이나 된 모자이크 작품은 죽음 앞에, 재물은 무의미하며 모든 게 평등할 뿐이라는 메시지다.

예나 지금이나 죽음과 재물에 대한 회의에는 변함이 없나 보다. 개선장군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거나 겸손의 덕목을 갖추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화려한 승리를 위해 집념을 갖고 더 많은 물욕과 더 높은 권세를 쟁취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요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 욕심의 승자는 죽거나 사라지고 어디에도 없다.

문득 한 고결한 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소유'를 말하던 그는 고귀한 한 마리의 학처럼 한세상을 살다가 훌훌 털고 갔다. 가벼운 산책을 하듯, 미련 없이 휘적휘적 먼 길을 떠나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신 길 위에 삶의 신선하고 맑은 향기가 넘쳐났다.

무소유란 전연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 한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하나하나 버리면 가벼움을 느끼게 된다. 청빈을 삶의 목표로 함에 따라 정신적 풍요를 느낀다는 깊은 삶의 의지가 더없이 돋보이는 그의 정신세계였다. 맑은 가난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해준다.

옛말에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다. 주어진 가난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청빈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삶의 미덕인 듯 여겨진다. 그의 자태가, 말씀이 새삼 와 닿는다.

죽음은 늘 대문 앞에서 끈질기게 감시하며 기다리고 있다. 태어남에 이미 죽음의 운명을 잉태하고 있지만,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럽게 맞게 되는 것이니 익숙하지 않다. 불쑥 나타나는 죽음의 세계란 인간의 경험영역, 지각영역을 넘어서는 차원의 문제다. 고로, 그 본체를 파악하기란 어렵다.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연극은 죽음 앞에서 공평하게 막을 내린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다. 이제 물욕을 버리고, 언젠가 닥칠 죽음을 부끄럽지 않게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빨간 경고등' 앞에서 삶을 한번 되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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