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트럼펫 주자이자 가수인 쳇 베이커는 낭만적이면서도 극도의 우울함을 연주와 노래에 담았다. 잘생긴 외모로 인해 1950년대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 불리며 웨스트코스트 쿨 재즈의 한 축이 되었으나, 1960년대에는 약물 중독으로 인해 막장 인생을 살며 음악인으로서 추락했다. 그리고 다시 재기하게 된 결정적 시기를 다룬 영화다.
전설적인 재즈인의 전기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실존 인물인 쳇 베이커를 중심에 두지만, 그의 일대기를 다루지 않은 채 많은 부분에서 픽션을 가미한다. 충실하게 사건을 재연하는 방식을 버린 자리에는 초현실적인 무드가 흐르며 베이커의 영혼의 울림에 더욱 가까이 다가선다. 그리하여 삶의 우울이 창조해낸 그의 음악적 정수가 심장을 두드리는, 아프고 시리며 아름다운 서정적인 영화가 되었다.
재즈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음악가인 쳇 베이커를 기억하는 재즈 마니아에게 호소하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쳇 베이커나 당대 재즈 분위기를 몰라도 에단 호크가 분한 쳇 베이커 그 자체인 음악, 그리고 그의 사랑, 정신적 방황과 선택을 둘러싼 이야기는 충분히 즐길거리가 풍부한 예술적 요소들이다.
영화는 1966년 쳇 베이커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마약 중독과 폭행 사고로 더 이상 연주가 불가능해 보이던 쳇 베이커(에단 호크)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 제작 현장에서 여배우 제인(카르멘 에조고)을 만나 다시 트럼펫을 들고 재기의 희망을 가진다. 하지만 쳇은 길에서 심하게 폭행당해 잇몸이 주저앉고 이가 망가지게 된다. 관악기 연주자인 그에게는 치명적인 사고였다. 쳇은 틀니를 낀 채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그의 초기 시절부터 함께했던 음반 제작자들은 약을 끊었다지만 다시 손대기를 반복해온 쳇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였다. 그의 곁에 남은 건 제인과 재즈뿐이다.
영화는 두 개의 시간대를 오간다. 현재 시점인 1960년대 중반과 쳇 베이커의 영광스러운 시절인 1950년대 중반이다. 컬러로 구성된 현재 시점과 흑백으로 이루어진 과거 시점이 교차하는데, 특이한 점은 1950년대 과거 시점은 회상이 아니라 쳇이 연기하는 촬영된 필름이다. 영화는 몽롱한 쳇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듯이, 컬러와 흑백, 과거와 현재, 현실과 연기 사이를 오가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다. 재즈가 불러일으키는 낭만적이면서 몽롱하고 또한 극도로 우울한 감각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쳇 베이커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에 이미 재즈는 로큰롤과 포크록에 자리를 내주며 몰락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잘생긴 외모와 반항적인 이미지는 당대의 청년문화와 맞물리며 마지막 재즈의 불꽃을 일으키는 요인이었다. 그리고 1960년대 재즈는 완전히 몰락한 상태였고, 약물로 만신창이가 된 쳇의 인생과 일치한다.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는 재기를 꿈꾸지만, 유약한 심신과 잘못된 선택은 그를 제대로 일어설 수 없게 했다. 온갖 장르적 실험을 통해 재즈의 새 길을 개척한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한 콤플렉스, 프로 음악인이었던 아버지와의 인간적 갈등, 약과의 끝없는 싸움, 동업자들과의 다툼, 그리고 미숙한 사랑. 이 모든 것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유약한 인간이지만, 그의 음악만은 언제나 청춘이었다.
예술가의 두려움, 불안함, 우울은 창작열로 승화되어 듣는 이에게 심장을 찌를 듯이 아프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감동을 준다. 쳇 베이커는 한없이 초라했다가도 진심을 다하는 무대에서 진정성 있는 노래를 관객에게 들려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재즈란 바로 굴곡진 인생'이라는 점을 체험하게 된다. 재즈 전설로 불리는 한 인간의 나약한 본 모습에서, 덧없는 세상살이를 '쿨하게' 견뎌보자는 묘한 다짐이 생겨난다.
영혼의 떨림까지 연기한 에단 호크는 15년 전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함께 쳇 베이커 영화를 구상하다가 무산된 이후, 다시 한 번 쳇 베이커를 연기할 일생일대의 행운을 잡았다. 그는 내년 아카데미영화제가 기대될 만큼의 명연기를 펼친다. 애틋하고 불가사의한 그의 눈동자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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