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진짜 '엄마' 가짜 '엄마'

전북 익산 출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전북 익산 출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목숨을 잃은 김 군의 분향소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가 찾아와 손을 맞잡았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1997년생 동갑내기 아이들을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낸 두 '엄마'는 아픔을 함께 나누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에게 직장에서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랬어요. 저 때문에 죽은 거예요."

"저도 선원 말 잘 들어라, 방송 지시 잘 따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떠났어요."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비정한 사회에서 스크린도어 비정규직 수리공의 사고는 이미 예견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2인 1조'라는 매뉴얼이 있는데도 지연배상금이 두려워 안전에 관한 규칙 따위는 애당초 무시되기 일쑤였다. 당연한 법칙을 깨뜨린 세월호 참사 역시 대형 사고의 악몽은 응당한 결과였다. 위기 상황에서 구조요원의 지시와 안내에 따라 질서 있게 행동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규율을 지킨 아이들만 처참히 가라앉았다. 엄연히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어른들의 이기심에 아이들이 희생당했음에도 '엄마'는 모든 것이 내 탓만 같아서 가슴이 무너진다. 작업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시간도 없이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는지, 아이들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한 당신들 잘못이라며 자책감에 땅을 치며 울음을 토해낸다.

'엄마'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누구나 이런 느낌을 떠올리지 않을까. 아이를 품어 줄 수 있는 따뜻한 가슴,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무한한 사랑, 내 아이 네 아이 가리지 않고 모두 내 자식같이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의 정, 끊임없는 희생정신과 몰래 훔치는 눈물…. 그런데 숭고한 '엄마'라는 단어에 군대식 용어인 '부대'라는 이름을 붙여 막말을 일삼고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무자비한 '엄마'들이 나타났다.

구의역 희생자 소식으로 전국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던 지난 3일, '엄마부대 봉사단'(대표 주옥순)이 김 군의 빈소에 난입했다. 고인의 영정 사진과 부모를 무단으로 촬영하다가 유가족과 마찰을 빚고는 되레 난동을 벌이며 장례식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엄마부대의 일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세월호처럼 키우려고 하는 거냐"라며 소리쳤고, 주 대표는 현장의 기자들에게 "우파 기자는 하나도 안 보이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고인에 대한 애도는커녕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폄훼하고 정치적으로 편 가르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는 "우리가 배타고 놀러 가라 그랬어요, 누가 죽으라 그랬어요?"라고 막말을 퍼부었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는 "아베께서 사과하셨으니 할머니들이 희생해 달라"며 상처 깊은 할머니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것도 거룩하고 고귀한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최근엔 엄마(mom)에 충(蟲)을 붙여 엄마를 벌레에 비유한 '맘충'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아이가 기물을 파손해도 "애가 그럴 수 있지" 하며 큰소리치는 엄마,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시끄럽게 뛰어 지적을 받으면 "애를 기죽이냐"며 적반하장격인 엄마, 내 자식만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타인에게 온갖 민폐를 끼치는 엄마가 바로 '맘충'의 대표적인 예다. 오죽했으면 '벌레 같은 엄마'라는 말로 '엄마'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변질된 가짜 '엄마'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엄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모성애를 느끼게 해주고 어떤 잘못도 너그럽게 감싸주는 존재로 각인돼 있다. 국민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려주고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엄마', 갈라지고 찢어진 이 사회를 하나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진짜 '엄마'가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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