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제자들아, 달이 너희를 비추거든 내 마음 알아주시게

내 마음 환한 달빛

이만부

이 달이 늘상 와서 나의 창을 지켜주니

달그림자 맑을 때는 호롱불도 껐었다오.

달이 만약 여러분의 책상 위를 비추거든

내 마음 이 환한 달빛, 그걸 알아주시게나.

此月常來守我窓(차월상래수아창)

有時淸影廢油缸(유시청영폐유항)

若逢月往諸公案(약봉월왕제공안)

知我心如此月光(지아심여차월광)

1732년 어느 달 어느 날, 조선후기의 큰 학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1664~1732) 선생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집안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자손들에게도 마지막 훈계를 했다. 실오라기 같은 목숨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모시고 있는 제자들에게도 최후의 가르침을 베풀었다. 식산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면서 집안 부녀자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오현도(五賢圖)를 펼치게 했다. 그가 일생 동안 마음으로 받들어 왔던 주자(朱子) 등 다섯 분의 현인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 다섯 현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하직의 인사를 올렸다. 잠시 후에 그는 이 지상 세계의 마지막 일로 칠언절구(七言絶句) 한 수를 지었다. 다음 날 아침 방을 청소하고 이부자리를 정돈하게 한 뒤 문득 세상을 훌훌 떠났다.

위의 작품은 식산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최후로 읊었다는 바로 그 시다. 아마도 그 무렵 달이 창밖에 떠 있었던 모양이다. 일생동안 가난한 선비의 창을 환하게 비춰주던 달, 그는 그 환한 달빛이 비칠 때마다 호롱불조차 끈 채 그 맑은 달빛에 목욕을 했다. 그와 같은 세월이 쌓여가는 동안 그의 마음도 점점 환한 달빛을 닮아갔다. 이러다가 어쩌면 죽은 뒤에 휘영청 밝은 달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달이 만약 여러분의 책상 위를 비추거든/ 내 마음 이 환한 달빛, 그걸 알아주시게나." 이토록 서늘하고도 가슴 뭉클한 시를 남기고 죽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인생을 정말 멋지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도 될 게다.

"전등은 나가고 훤한 달빛만이 영창에 어리는 외로운 밤이다. 무심히 머리맡의 조약돌을 만져본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누추하고 꼴사나운 시체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이불 속에 이 돌 하나만 남겨놓고 밤새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가뿐하고 깨끗할까?" '조약돌 같은 인간'을 꿈꾸었던 수필가 윤오영의 명품 의 한 대목이다. 식산도 물론 누추하고 꼴사나운 시체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겠지만, 인간 존재의 숙명적 조건상 아마도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이 한 편의 시는 윤오영이 이불 속에 고이 남기고 떠나고 싶었던 바로 그 '조약돌' 같은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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