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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양명학자와 북 디자이너의 '컬래버레이션'…『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최재목 지음/ 정병규에디션 펴냄

이 책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외국에서 먼저 주목받은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의 양명학 연구 저서가 발간 10년 만에 국내로 역수입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 최초의 북 디자이너, 정병규 디자이너가 직접 차린 출판사 '정병규에디션'의 첫 전문학술서 작품이라는 것이다.

국내 최고의 양명학자와 국내 최고의 북 디자이너가 컬래버레이션(합작)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양명학과 디자인은 얼핏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실은 통한다는 점에서도 이채롭다. 대구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최 교수와 대구가 고향인 정 디자이너는 지난 7일 현대백화점 대구점 문화센터에서 책 출간 기념 특강을 하기도 했다. 이 책, 뭔가 새로운 세계를 담고 있다.

◆최재목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는 2006년 일본 유명 출판사인 페리칸사에서 일본어로 발간됐고, 2011년 대만에서 중국어판으로도 출판됐다. 외국에서는 이미 관련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힐 만큼 권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 존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국내로 역수입되면서 다른 학자에 의해 번역이 진행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우진 박사가 3년에 걸쳐 번역했다. 이 박사는 번역을 넘어 내용 보완에 대해 최 교수와 함께 논의했고, 최 교수의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책에 추가됐다. 따라서 이 책은 기존 일본어판 및 중국어판보다 더욱 심화된 내용을 다룬다.

이 책은 벌써부터 기존 양명학 연구를 획기적으로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명학은 중국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중국, 한국, 일본 등 3국에서 함께 연구되고 전승됐다. 그래서 지금의 양명학은 보편성과 각 지역의 특수성을 함께 바라봐야 하는 학문이 됐다. 이 책은 양명학 삼국지다. 중국, 한국, 일본의 양명학을 동등하게 보고, 각각 어떤 독자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려 했는지 파고든다. 그동안 한'중 양명학 비교 연구는 종종 있었지만, 3국을 함께 비교한 시도는 없었다. 어떤 양명학 책보다 풍부하고 깊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정병규

최재목 교수와 정병규 디자이너의 인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교수가 유럽에 체류하며 교수신문에 연재한 에세이들을 모은 책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2013)의 북 디자인을 정 디자이너가 맡았다. 두 사람은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이 "그때 서로 눈이 맞았다"고 표현했다.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는 두 번째 합작품이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정 디자이너는 경북중'고등학교 교지 편집을 맡은 것이 북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였다. 이후 고려대를 졸업하고 1975년 '소설문예'에 입사하면서 정식으로 출판계에 들어섰다. '민음사'에서 일하다 1978년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북 디자인 독학을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 유학도 다녀왔다.

정 디자이너는 한수산의 '부초'(1977)를 시작으로 황석영의 '장길산'(1984),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한국 출간 1986) 등 북 디자인으로 화제가 된 숱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1989년 1회 교보북디자인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병규북디자인전'을 1996년부터 개최했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 학교 '정병규 학교'를 2012년에 설립했다. 그리고 올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출판사 '정병규 에디션'을 차리고 예전보다 꽤 험난해진 출판계에 북 디자이너를 넘어 아예 제작자로 뛰어들었다. 올해 그의 나이 70세다.

◆최재목×정병규

이렇듯 최재목 교수와 정병규 디자이너의 커리어는 둘 중 어느 한쪽에 비중을 더 두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쟁쟁하다. 그래서 이 책은 두 가지 모드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양명학 연구의 가장 넓은 지평을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 한국 북 디자인의 가장 진일보한 예제로 말이다.

정 디자이너는 "그동안 북 디자인을 하며 쌓아온 생각들을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책 작업에 적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디자인을 '하나의 격을 만드는 것'으로 풀이한다. 정 디자이너는 "디자인(design)은 우리나라에서 '장식'이라는 단어로 처음 번역됐다. 아니다. 디자인은 그저 주변부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요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도 동감하는 부분이다. 최 교수는 "양명학 연구도 그렇고 '개념'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개념이란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병규 디자이너의 디자인에 대한 지론은 그래서 지금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이 책은 요즘 정 디자이너가 시도하고 있는 선언적이고 실험적인 한글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테이프를 찢어 표현한 표지 디자인은 정 디자이너가 김성종의 '백색인간'(2008) 표지에서 처음 시도한 정 디자이너의 전매특허 '테이프 타이포그래피'다. 사실 정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한글 미학은 책 전체에 녹아 있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세로쓰기의 활용이 한 예다. 정 디자이너는 "한글은 가로로도 세로로도 쓸 수 있다. 알파벳은 세로 쓰기에 한계가 있다. 서양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728쪽,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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