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와 '청년'은 최근 급속한 고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농촌 현실에서 보면 그리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오래전부터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농촌이 사회적 문젯거리로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청년들이 농사와 관련된 창업에 불을 지피면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퉈 '6차 산업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지원하면서,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 해소에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에서는 농촌으로 돌아오는 청년 히어로들과 그들이 얘기하는 창업 노하우, 그리고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창업 실패율 줄이는 팁 등을 소개한다.
◆전지가위 들고 해외로 누빈다
김지영(36) 씨는 특이한 이력의 청년 창업가다. 계명대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도 구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다. 그런 김 씨가 장사에 손을 댄 것은 지난 2005년. 그해 10월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생기면서다.
"부양가족이 생기면서 합창단 수입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어렵더군요. 합창단은 주 2회만 나가면 되기 때문에 나머지 날을 이용해서 장사에 나선 거지요." 김 씨는 이탈리아 유학까지 포기했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의류와 액세서리.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옷가지들을 팔기 시작했다. 값싼 물건을 들고 와 장사를 한 지 2년 만에 많은 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07년엔 서문시장 동산상가에 옷가게까지 열었을 정도. 사업은 번창했고, 그가 파는 물품도 시계 등의 장신구까지 확대됐다.
"잘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격언을 명심했어야 했는데, 참 후회됩니다. 제대로 된 사장 소리 듣고 싶어서 2011년 제조업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어요." 친척이 하고 있던 터치스크린 패널용 필름 사업에 손을 뻗쳤다. 경산에 공장도 짓는 등 부푼 꿈을 꿨지만 사업은 대실패로 끝이 났다. 그는 "특허 관련 소송에 휘말리면서 제품 판매가 완전히 막혔다. 처음 시작할 때 특허 관련 법률지식이 부족했던 것이 이유였다"고 고개를 숙였다.
10억원 이상 손실을 봤다. 집에는 이 사실을 알릴 수가 없어, 한동안 PC방을 전전하며 거의 노숙자처럼 지냈다고 했다.
자포자기 인생을 살던 김 씨에게 구세주가 나타난 것은 2014년. 경산 공장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이 일거리를 준 것이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미 망했지만 예전 공장에 밀링, 선반 등 각종 기계장비가 있어서 철강 가공 일을 하게 됐지요. 업체에서 필요한 부품을 주문하면 철강'금속재료를 잘라 공급하는 일이었어요."
장사는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됐다. 그러나 김 씨는 여전히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토대로 물건을 파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 그의 눈에 나타난 것이 전지가위였다. "경산의 한 포도농가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70대 할아버지가 전지가위로 가지를 자르느라 손이 아프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었지요. 그때 '자동으로 돌아가는 커터날로 가지를 자르면 힘이 덜 들 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그는 자동 전지가위 만드는 데 착수했다. 디자인도 개발했고, 과수농가에서 어떤 기계가 필요한지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의견을 들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전국을 누비느라, 자동차로 18만㎞를 다녔다. 김 씨가 방문한 농가도 수천 가구는 넘을 것이라고 했다.
1년 4개월 만의 노력 끝에 그는 배터리, 모터, 칼날 등이 최적화된 자동 전지가위를 만들었다. 'BAROCUT'이라는 상표 등록도 마쳤다. "안전검사필이 이달 중순쯤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과수농가는 수요조사를 마쳤고, 일본의 한 유통업체와도 150억원 상당의 납품 MOU를 맺었어요."
"생김새는 건축현장에서 쓰이는 그라인더와 비슷합니다. 건축현장의 기계를 농업현장에 가지고 왔다고 보면 되지요. 그동안 만난 과수농가에서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라는 평들이 많았어요. 시장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김 씨는 국내 시장을 떠나 유럽 등 해외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유럽은 일찍이 와인 생산 등을 위해 포도농가가 많은 지역. 그는 "독일의 한 공구마트와는 이미 만났는데, 평이 정말 좋았다"면서 "이 외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칠레 등지에도 제가 만든 전지가위가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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