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슨 의미일까?" 모호한 기호 보며 상상해보세요

우손갤러리 이배전 8월 6일까지…숯의 검정, 관념을 이미지로 바꿔

이배 작
이배 작 '무제'.

파리와 뉴욕,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배 작가의 개인전이 우손갤러리에 마련된다.

이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은 주재료인 숯과 동양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접근한다. 이배 작품에서 나타나는 동양적 관점의 철학이나 전통적 소재, 그리고 한국 추상미술이 가지는 특유의 절제된 조형적 정교함은 그가 분명히 동양적 뿌리를 지닌 작가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전통적 근원 못지않게 동시대의 사회적 흐름에 동참하는 현대(컨템포러리) 미술작가로서의 이배의 '관점'에 관한 것이다.

청도 출생의 이배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1989년 예술의 나라 프랑스로 건너간다. 당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중국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전환의 물결이 일던 시대였고, 이배 자신 역시 작가적 인생이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1989년 그가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일어난 큰 변화는 '검정'으로의 전개다. 그것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통해 그동안 믿고 쌓아왔던 많은 것을 향한 인식의 변화가 벽이 무너지듯 검은색 화면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배 작품의 검은색 모노크롬(단색)은 모든 현실적 요소를 극도로 압축시켜 축적된 포화상태라는 점에서 다른 모노크롬 작품과 구분된다.

이처럼 '숯'은 이배 작가에게 중요한 재료이다. 숯은 나무의 재질이 단단하지 않으면 전소되어 버리고 밀도 있고 단단한 목질만이 남아 새로운 에너지로 변환된다. 또 소멸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로 재탄생한다.

2000년대 들어 이배의 검정이 내포하는 가능성은 공간을 넘어서 시간의 연구로 이어진다. 또 화면 전체를 덮고 있던 숯의 검정은 한층 더 밀도 높은 먹의 검정이 왁스와 같은 매재(媒材)와 혼합돼 모호한 기호적 형태로 캔버스 위에 나타난다. 이런 모호한 기호는 관념을 이미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은미 큐레이터는 "이배는 이러한 자연이나 사물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지 않는 모호한 기호를 통해 보는 사람의 참여를 유발시키고 각자의 주체적 참여를 통해 작품을 완성한다"며 "시대의 흐름은 예술에 반영되고, 그 시대적 동향 속에 자신을 포함시킬지 제외시킬지에 대한 판단은 작가의 주체적 의지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 능력은 다양하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작가의 주체적 인식을 통해 '의미의 변환'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의 독자적 관점이며 동시에 작가의 독창성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전환'(TRANSITION)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8월 6일(토)까지 진행된다. 053)427-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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