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도급 '대금 갑질' 시정 50% 늘어나

납품 대금 안주거나 단가 인하 횡포…대구 경북 車부품업계 위기감 고조

최근 몇 년간 완성차 판매 불황의 영향으로 지역 자동차부품업계에 편법 계약, 대금 지연 등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빈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공정위가 시정 조치를 결정한 기업 불공정행위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이라는 기형적 구조의 부작용이 터지면서 지역 부품업체의 줄도산이 우려된다.

경산에 위치한 자동차 3차 부품업체인 A사는 2013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2년여 간 영천에 있는 2차 부품업체 H사에 현대자동차 부품 2종을 납품해 왔다. 이 기간 A사는 장비 2대를 구입하고, 2명을 신규 고용하는 등 투자도 확대했다. 그러나 A사는 H사와의 거래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또 납품 대금 대신 가단가(정식 단가 책정 전에 미리 제시하는 금액)가 적힌 세금계산서만 매달 받았다. H사는 2014년 말까지 A사에 직원 인건비 수준인 6천만원을 어음으로 지급하는 데 그쳤다.

A사가 대금 지급을 꾸준히 요구하자 H사는 지난 1월 A사와 다른 상위 업체 2곳이 모인 자리에서 '설비투자 보상금 3억원과 납품대금, 재고비용을 A사에 지급하고 아이템 이관 후에도 매출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A사 대표는 "아직까지 H사로부터 3억원 외에 다른 금액은 결제받지 못했다. 1억원이 넘는 운영비가 부족해 지난 3월 결국 폐업했다"고 주장했다. 대금 결제를 기다리다 못한 A사는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에 H사를 신고,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H사 대표는 "2차 업체에서 3차 업체로 하청을 줄 때 단가를 책정하거나 거래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관행이다. 우리 회사의 원청업체 역시 제때 단가를 책정하지 않고 대금도 주지 않았다 보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A사가 고의로 부도를 낸 뒤 현대차 자산인 금형을 볼모로 잡고 대금을 요구해 예상 단가보다 2천300만원이 많은 6천만원과 합의금 3억원을 어렵게 구해 지급했는데도 A사의 부도와 금형 지연 반납 등으로 은행 및 현대차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상황이다. 해당 업체를 형사고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역에는 3년째 납품단가도 정하지 않은 채 H사에 물건을 납품했거나, 업계 표준보다 낮은 단가를 책정받은 탓에 손해를 겪는 곳이 두어 곳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국회예산정책처가 공개한 '2016년 대한민국 재정'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 조치를 결정한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는 전년보다 8% 증가한 2천62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3천84건)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하도급법'가맹사업법 위반 행위가 큰 폭으로 증가한 점이 주된 요인이 됐다. '갑을' 구도에서 이뤄지는 불공정 행위는 통상 경기 침체 상황에서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납품 대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하는 하도급법 위반 시정 건수는 1천344건으로 전년(911건)보다 무려 50% 가까이 늘었다. 서면계약서 미발급 사례에 대한 시정 조치도 212건을 기록했다.

대구지방공정거래사무소 관계자는 "하도급 대금 결제 문제로 송사를 겪다가 폐업에 이르는 지역 업체가 많다. 상위업체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다른 하청업체에 대금을 미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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