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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21세기에도 존재하는 주홍글씨

박 소 영
박 소 영

아직도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면 색안경을 끼고 당사자를 보는 시선이 만연해 있다. 행실이 반듯하지 못하거나 가해 남성을 도발하는 옷차림이나 행동을 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을 거라는 왜곡된 시선이 주홍글씨처럼 피해자를 따라다닌다. 지난달 발생한 일명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처음에 일부 섬 주민들은 이웃인 가해 남성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윤간이라는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인 새내기 교사는 그들에게 조용한 섬에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최초로 이름을 남긴 여성 작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도 성폭행 피해자였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당시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미술교육을 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화가인 타씨를 신뢰해서 딸의 그림 지도를 맡겼는데, 타씨는 그림을 지도한다는 미명 아래 작업실에서 17세 된 친구의 딸을 성폭행했다. 타씨는 아르테미시아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비겁하게 지키지 않아서 결국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갔다.

당시 여론은 유명 화가인데다 언변이 화려한 타씨에게 긍정적으로 몰려 아르테미시아는 성실한 유부남을 유혹한 못된 여자로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부인을 살해하려 했던 계획과 처제를 성폭행했던 혐의까지 밝혀지면서 결국 타씨는 1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녀가 지난한 법정싸움을 통해 당시 여성에게 향했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외로이 투쟁했던 점은 향후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점은 이스라엘을 구한 애국자이자 팜 파탈의 전형으로 불리는 유디트를 주제로 한 3점의 그림에서 두드러진다.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자신의 미모와 술로 적장을 무장해체시킨 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단칼에 적장의 목을 베는 단호한 여전사의 힘을 발산하고 있다. 반면, 바로크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카라바치오가 그린 동명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주저하며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이다. 아르테미시아는 정의롭지 못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자신의 힘으로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려는 의지를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언론에서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이 연일 이슈가 되자 해당 교육청의 부교육감이 언론사 카메라를 향해 사과했다. 처음 이 사건이 보고되었을 때 교육청은 근무시간 외에 발생한 교사의 개인적인 사건이라며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2주 동안 쉬쉬하기에 급급했다. 피해자의 용기와 침착한 대응이 없었더라면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되는 주홍글씨가 아직도 존재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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