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쥐를 잘 잡는 법

1970년 1월 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펼쳐졌다. 이를 위해 농림부는 전국 540만 가구에 쥐약을 나누어 주고 '쥐약 놓는 날'을 정해 전국이 동시에 쥐약을 놓도록 했다. 곳곳에 안내문을 붙여 쥐약 놓는 날을 알렸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지침을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한 쥐잡기 운동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1970년 농림부가 추산한 국내 쥐는 9천만 마리였다. 쥐가 먹어치우는 식량이 한 해 약 240만 섬으로 추정됐다. 비용으로 치면 240억원 규모였고, 당시 곡물 총 생산량의 8% 정도였다. 쥐를 절반만 잡아도 쌀 120만 섬을 확보하는 셈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쌀이 부족해 보리나 감자로 끼니를 잇는 집이 많았고, 점심을 굶는 학생도 많았다. 쌀 한톨이 아까운 시절이었다.

쥐잡기는 정부와 공무원만의 일이 아니었다. 가정, 직장, 학교, 마을 어디서나 쥐를 잡았다.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들고 가서 선생님께 검사를 받기도 했다. 부모님들로부터 "내일은 쥐약 놓는 날이니까 후미진 곳에 놓아둔 음식을 먹으면 큰일난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말하자면 당시 한국인에게 쥐를 잡는 일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전 국민이 동참한 결과 첫 번째 쥐잡기에서 4천만 마리를 잡았고, 2차, 3차 운동에서도 3천만 마리, 4천만 마리를 잡았다. 비록 쥐를 소탕하지는 못했으나 쥐로 인한 식량 손실, 전염병 피해를 많이 줄인 것은 분명했다. 투입한 쥐약 비용(연간 약 1억원) 대비 경제적 이익은 100배가 넘었다.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캠페인이 담당 기관 혹은 관련 단체만의 행사로 끝나고 있다. 정기적으로 무슨 행사가 열리기는 하는데 주관 기관, 산하단체, 공무원 행사로 끝나는 것이다.

선진 각국은 1970년대, 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6월 5일을 '환경의 날'로 정하고,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그러나 민간인 참여는 드물다. 서울의 경우 환경부와 민간단체, 경제 5단체가 주최하고, 지방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한다. 행사 역시 캠페인이나 전시회 같은 홍보 행사, 세미나, 심포지엄 같은 학술 행사, 글짓기, 노래 같은 문화 행사가 주를 이룬다.

세미나, 전시회, 학술 행사, 글짓기 모두 전문가 그룹이나 관련 단체가 아니면 동원된 학생들이 참여할 뿐 민간인이, 그것도 일상생활에서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1970, 80년대 '쥐잡기'처럼 모든 국민이 생활 속에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는 것이다. 환경 문제하면 으레 산, 강, 바다를 연상하는 것도 환경보전을 내 생활과는 먼 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열린 대구시 중구청의 올해 '환경의 날' 행사는 환경을 '산, 강, 바다'의 문제가 아니라 내 집, 우리 동네의 문제로 인식하게 했다. 정부나 환경단체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 우리 가족의 일로 느끼도록 했던 것이다.

중구청은 올해 환경의 날에 학술대회나 전시회를 여는 대신, 친환경 세제 만들기, 에코백 만들기, 절수 기기 소개 등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환경보전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렸다.

특히 중구 관내인 약전골목에서 나오는 한약재 찌꺼기로 만든 친환경 퇴비와 고추 모종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어 집에서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음식물 찌꺼기로 퇴비를 만들고, 집에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환경보전을 '행사'로 끝내지 않고 '생활'이 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은 연간 1조원이 넘는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식량으로 환산할 경우 20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냥 쥐가 아니라 '슈퍼 쥐'인 것이다.

고추는 병해충이 많은 작물이다. 그래서 대규모 재배 농가에서는 농약을 대량 살포한다.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퇴비와 천연 농약으로 가정에서 고추 3, 4포기와 상추 몇 포기만 길러도 농약과 쓰레기라는 '슈퍼 쥐'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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