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한 학생은 현지에서 화장지를 보고 문화적 충격에 빠졌다. 당시만 해도 뒷간에서 신문지나 달력으로 뒤를 훔치던 시절이었다.
"그래, 이 아이템이야." 바로 공장에 들어간 학생은 3년 만에 전 제지(製紙) 공정을 마스터하고 한국에 돌아와 화장지 공장을 세웠다. 이 회사가 바로 유한킴벌리다. 공항 라운지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스카이콩콩'을 보고 그 자리서 쇠톱으로 잘라와 한국에서 제품으로 만들어 재미를 봤다는 얘기도 있고 외국에서 홈쇼핑 TV를 보고 한국에 도입해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10여 년 전 친구들과 일본에 갔을 때다. 당시 하이패스를 처음 접하고 친구들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와! 신기하다'며 감탄에 그친 친구가 있었고 돌아오자마자 하이패스 관련 업체를 수소문해 주식을 사들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몇 년 새 두세 배 차익을 남겼음은 물론이다.
미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코스트코, 월마트, 샘스클럽 등 대형마트에 가서 신나게 쇼핑을 한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한 친구는 사업의 장래성을 보고 유통업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얼마 전 '이름의 인문학, 개명의 사회학' 취재를 하며 몇몇 작명원장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유감스럽게 취재 과정서 난 사주에 재운(財運)이니 재물복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전형적인 스태프 체질' '오행(五行)이 중화(中和)되지 않는 사주'라는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다. 대놓고 '당신은 가난뱅이로 살 팔자요'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월급쟁이로 가늘고 길게 살 팔자라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것 같았다. 사주 탓인지 몰라도 필자는 재테크에 크게 둔감하다. 20년째 소형 아파트에 한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흔한 주식계좌 하나 없다. 친구로부터 몇 차례 아파트 투자를 권유받았지만 망설이는 바람에 기회를 다 날려 버렸다. 그때 몸을 움직였다면 중형 아파트에 살면서 노후도 훨씬 안정되었을 것이다. 한 번 은행 창구 직원 꾐에(?) 빠져 펀드에 투자했다가 원금을 까먹은 기억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도한 재테크였다.
얼마 전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동유럽에 갔다 왔다. 출발 전 아내와 난 반드시 히트 아이템을 하나씩 잡아오자고 약속을 했다. 우리가 창업은 못하더라도 유망 주식 아이템이라도 하나 잡아 살림을 펴보자는 취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부부는 현지에서 단 한 번도 이 생각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귀국해서도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우리는 '그쪽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라 크게 배울 점이 없었다'는데 스스로 위안하며 그냥 웃어넘겼다. 결국 재운(財運)은 후천적 노력보다 선천적 감(感)이라는 데 결론이 모였고 유감스럽게 우린 재테크 수신감도가 매우 낮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대상을 보고, 같은 공간에 머무르지만, 그 속에서 누구는 천금의 기회를 찾아내고 누구는 그저 그런 일상으로 흘려버린다. 작명원 원장 말대로 내게 '재(財)테크'는 '재(災)테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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