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훈의 달, 북한을 생각하다

한민족의 '반쪽'…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인 영화 '공조'는 제목 그대로 남북 간 공조 수사를 다룬다. 남한으로 숨어든 탈북 범죄조직을 함께 쫓는 남과 북의 형사가 펼치는 액션극이다. 물론 그렇게 낯선 스토리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남북 공조'라는 단어가 생경하기만 하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올 스톱' 상태인 남북 관계가 돌파구를 전혀 찾지 못하는 탓이다.

오는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 발발 66주년이다. 포성은 오래전에 멈췄지만 강고한 대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민족 간 이질감만 더욱 짙어져 '딴 나라'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에서는 남북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한 가지에 나고도….' 월명사가 지은 신라 향가 '제망매가'의 한 부분이 아니다. 분단된 현실에 살고 있는 남과 북은 '한 뿌리'에서 자라 '한 가지'에서 갈라졌으나 이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반세기를 훌쩍 넘겨버린 분단의 세월, 뿌리를 같이하는 한 민족인 남과 북은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이제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이 오면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이 먼저 있지 않으면 통일을 외치는 구호도 구두선이 되고 말 것이다. 60여 년의 세월 속에 골이 깊어가는 우리의 반쪽, 그 의미에 대해 성찰해보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남북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지만 우리 사회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오히려 북한에 대한 경계심만 높아지고 있다. 핵실험, 장거리 로켓 발사 등 잇따른 군사 도발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지난 3월 여론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77.7%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82.1%), 3분기(80.4%)에 비해 감소한 수치다. 통일 예상 시기에 대해서는 '10년 이내'(20.2%), '20년 이내'(18.7%) 순으로 답한 가운데 '불가능하다'는 응답도 19.8%에 이르렀다.

특히 이번 조사에선 '북한은 경계대상'이라는 인식(34.6%)이 '협력대상'이란 인식(27.2%)을 추월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4분기와 3분기에는 '경계대상'과 '협력대상' 응답자 비율이 각각 29.9% 대 35.8%, 28.2% 대 35.5%로 협력대상이란 응답이 높았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세대 간에도 차이가 난다. 의외로 젊은 층이 중장년층보다 북한에 더 적대적인 것으로 나타난 조사도 있다. 한국외대 이재묵'박영득 교수팀이 최근 발표한 '세대에 따른 통일과 대북인식 차이 분석' 논문에서 북한을 지원'협력대상으로 인식한 정도는 '86세대'(1960∼1969년 출생)가 평균 4.89점으로 전체 세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1970년대에 출생한 X세대는 4.65점이었다.

반면 '탈냉전세대'(1980년대 출생)와 '밀레니엄세대'(1990년 이후 출생)는 각각 4.30점과 4.22점으로 조사돼 전전세대(1949년 이전 출생) 4.20점, 전후세대(1950∼1959년 출생) 4.41점과 비슷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탈냉전'밀레니엄세대는 정치의식이 형성되는 시기에 연평해전, 북한 핵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 등을 경험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질화…통일 후유증 예고

북한 관련 기사에는 종종 '북한 극혐, 김정은 핵극혐' 같은 인터넷 댓글이 달린다. 그러나 이런 시각의 확산이 근본적 대북관의 변화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남북 이질화가 상당히 진행돼 통일이 되더라도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선 남북은 쓰는 말부터 크게 다르다. 국립국어원이 2012년 펴낸 '탈북주민 한국어 사용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민은 남한에서 쓰는 단어의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탈북 청소년의 언어 장벽 문제는 원활한 정착과 성장을 위해 해결돼야 할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남북한 단어를 자동변환해주는 휴대전화 앱 '글동무'에서 직접 검색해보니 생소하기만 하다. 화장실은 위생실, 노트북은 노트컴, 횡단보도는 건늠길, 표준어는 문화어로 각각 소개된다. 생활언어는 30∼40%, 전문용어는 60% 이상 서로 차이가 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탈북자가 출연하는 각종 오락방송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는 방증이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생활은 남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장르 역시 다양하다. 남한 스타와 탈북 미녀의 가상 결혼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남남북녀', 새터민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북한 사정을 들려주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 탈북 청소년들의 고향 이야기를 듣는 '딱 좋은 친구들'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프로그램들이 동질성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경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영남대 통일문제연소 정병기(52'정치외교학과 교수) 소장은 "일부 탈북자의 경험이 일반화되는 것은 문제"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 상황을 희화화하거나 선정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제쯤 대화 물꼬 터질까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진전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상호 간에 불신의 골이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올 들어 식당종업원 탈북사건이 잇따르자 북한 당국은 최근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인 중국 내 일부 북한음식점에 한국인 출입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우리 정부 역시 물러설 뜻이 전혀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제20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북한'을 18차례나 언급했으나 대북 압박 기조를 재확인하는 수준이었다. 박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달성 문제는 결국 의지의 싸움"이라며 "반드시 '도발-대화-보상-재도발'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 현 정부는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5일은 '6'15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이었으나 6'15 남측위원회 등의 방북 신청은 불허됐다. 통일부는 "구비서류 등 방북 신청요건을 갖추지 못해 방북 신청을 반려했다"며 "현재로서는 남북 간 민간 접촉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북 정책이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 진전도 없다'는 이명박정부 시절로 회귀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 정부는 이명박정부와 비교하면 다소 유연한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앞세워 '통일 대박론' 등의 구상을 내놓았으나 실질적 진전이 없자 강경 일변도로 돌아섰다는 관측이다. 통일부 고위직 출신 한 인사는 "정책결정권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데 당분간은 압박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10년 가까이 미래를 위한 만남이 남북 간에 전혀 없었던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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