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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다카하시 도오루와 '조선인(朝鮮人)'

TK로 통용되는 대구의 명문 경북고등학교의 전신은 1916년 설립된 대구고등보통학교(대구고보)이다. 개교 당시 교장은 규슈(九州)신문 주필을 역임하고, 대한제국 초청으로 조선에 건너와 한성중학교(현재 경기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亭)였다. 다카하시는 동경제국대학 한문학과 출신의 엘리트로, 한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는 물론, 수년간 조선에서 생활하며 습득한 뛰어난 조선어 실력을 함께 지닌 인물이었다. 이와 같은 언어적 능력을 기반으로 그는 조선 문화와 조선인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카하시는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경성제대) 창립에 관여했으며, 1926년 경성제대가 창립되자 법문학부 조선 문학과 교수가 되어 조선 문학과 조선사상사를 강의하기도 했다. 대구고보 졸업생이며 경성제대 조선 문학과 1회 입학생인 국문학자 조윤제가 그의 제자였다. 해방 후에는 일본에 돌아가 조선 관련 연구회 '조선학회'(1950)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조선 불교와 유학에 관한 연구는 지금도 조선사상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다카하시의 조선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순수한 학문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조선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통해 조선인과 조선 문화에 대한 부정적 논리를 도출해내었고, 이 논리가 일본의 조선 지배를 합리화하는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발행한 단행본 '조선인'(1921)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책은 72쪽의 짧은 분량에,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조선인은 마치 결함투성이의 어린아이처럼 묘사되고 있다. 조선인은 고착이 심해서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정신이 부족하며, 순종적이지만 불평이 심하고, 낙천적인 반면 운명에 쉽게 순응해서 발전을 도모하지 않는 등 열등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 많은 조선인에게 새로운 미래란 불가능한 것일까.

다카하시가 제시하는 답은 간단하다. 일본인 스스로 열등한 조선민족을 향상시킬 의무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배려의 마음으로 조선인을 가르쳐 일본인에 동화시킬 때. 조선민족에게 미래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논리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동경제국대학 출신의 엘리트 다카하시가 조선인 엘리트 교육의 제 일선에 선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과 조선에서는 다카하시와 같은 엘리트들이 식민지 지배를 위해서 고안해낸 조선인에 관한 왜곡된 이미지들이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있었다. 일제 36년 동안 일본에 의해 집요하게, 치밀하게 진행되었던 조선인 비하 작업이 과연 해방 후 7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과 일본인의 의식 속에서 말끔히 지워졌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우리 사회 내부에서 통용되는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발언들이 오래전 일본이 우리에게 심은 왜곡된 조선인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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