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병우 "기타는 고향 같은 것…첫 앨범처럼 느껴져"

"마음이 그렇게 황폐하게 됐는데 손은 또 멀쩡하더라고요. (웃음) 고심 끝에 공연을 강행한 것은 손이 멀쩡한 것만 해도 축복이란 생각에서였어요."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나경원 의원 딸의 부정입학 논란'에도 지난 1일 LG아트센터에서 솔로 콘서트를 연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기타리스트이자 영화음악 감독이며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4·13 총선을 앞두고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3월 한 인터넷 언론이 이병우가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딸을 부정하게 입학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의혹은 일파만파로 퍼졌고 이병우의 순수했던 이미지는 급전직하했다.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개인 작업실에서 만난 이병우의 수척한 얼굴은 아직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사건이 불거지고서 한 달 새 맘고생으로 약 8㎏이 빠졌다고 그의 지인은 귀띔했다.

인터뷰 도중 때때로 입가에 미소를 띠었지만, 그의 미소에는 이전과 같은 생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다시 면접장에 선다 해도 똑같이 행동하시겠냐'고 묻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똑같이 할 거예요."

나 의원의 딸에게 면접 시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특혜가 아닌 지적 장애 학생에 대한 배려였다는 게 그의 일관된 해명이었다.

그 일로 마음고생을 겪고도 이병우는 5월 말 13년 만에 정규 앨범 '우주기타'를 선보였다. 또 지난 1일엔 '우주기타' 발매 기념 콘서트도 열었다.

어렵사리 '부정입학 의혹'에서 '우주기타'로 화제를 옮긴 이병우는 "기타로만 할 수 있는 음반을 하자, 기타 솔로만으로 연주하자는 게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 가진 생각이었다"면서 "그전에 만든 음반들이 그저 기타를 좋아해서 만든 앨범이라면 이번 음반은 기타와 녹음에 대해 많은 걸 공부하고 이해한 후에 만든 앨범이란 게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병우는 그동안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1989), '혼자 갖는 차(茶)시간을 위하여'(1990), '생각 없는 생각'(1993), '야간비행'(2001), '흡수(2003) 등 5장의 독집 음반을 냈다. 이후 '왕의 남자', '연애의 목적', '해운대', '마더', '국제시장' 등의 영화음악을 맡아왔다.

13년 동안 그의 기타 연주를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이병우의 영화음악 행보는 외도 아닌 외도였던 셈이다.

한편 이번 '우주기타'에는 제목처럼 무한하고 신비로운 우주를 탐험하는 듯 초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울림을 갖는 11곡의 기타 솔로 곡이 수록돼있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팬들에게 '우주기타'는 길고 긴 우주항해 끝의 귀환처럼 반가운 앨범이었다.

이병우는 인터뷰 내내 '밸런스'를 강조했다.

"앨범 녹음할 때도 마이크와 악기와의 거리도 밸런스에 중점을 뒀고 쇠줄 기타와 나일론 기타 그리고 일렉 기타 사운드 사이에서도 밸런스를 염두에 뒀어요. 음악이 서정적일 때도, 그리고 불협화음으로 신경을 거스를 때도 밸런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터치부터 마이크의 위치와 거리 등 밸런스를 위한 모든 작업이 그의 손끝을 거쳤다.

이병우는 "저한테는 '우주기타'가 마치 첫 앨범 것 같다"며 "기타에 대한 긴 연구 끝에 만들어낸 결실 같아서 기쁘다. 만족스럽다"고 했다.

또 가사 하나 없이 오로지 기타 사운드로만 이뤄진 곡인데도 '첫 번째 비행', '다시 출발', '모험을 걸다' 등의 수록곡들은 제목과 절묘한 매칭을 이루고 있다. 그는 "보통 머릿속에 악상이 떠오르면 그걸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스토리를 만들고 제목을 짓게 된다"며 "맨 처음부터 제목을 짓고 만든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수록곡 가운데 '아버지의 편지'는 제목을 생각해두고 만든 예외적인 곡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년쯤 됐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빈자리가 보이더군요. 굉장히 무뚝뚝하셨던 분인데 제가 유학 갔을 때 편지를 보내셨더라고요. 근데 아버지의 편지가 너무 익숙지 않았어요. 손 편지를 써서 보내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기억을 노래로 쓰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이병우의 눈가가 조금은 충혈돼 있었다.

이어 이병우는 "제게 기타는 고향 같은 것"이라며 "앞으로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밝혔다.

그는 "공연에 대한 걱정도 많았는데 많은 분이 제가 기타 치는 모습을 보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제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에 오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다 해도 그 사람을 위해 공연한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제 음악을 소중히 생각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겐 너무 소중한 거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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