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내각제·이원집정부제 개헌 주장
대통령 단임제가 부패의 근원인 듯 여겨
반면 내각 구성할 지식 있는 의원은 없어
민주주의 아닌 정치권 과두의 욕심일 뿐
정세균 국회의장이 작심한 듯 개헌을 들고 나왔다. 의장은 정치적 의견을 공표하거나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그 때문에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도록 한 것이다. 나는 역대 의회 수장들이 개헌을 주장하는 이 이상한 풍경에 놀란다. '국회의장도 국회의원이니 개헌을 주장할 수 있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정 의장은 "개헌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한발 더 나갔다. 바꿔 말하면 '현행 헌법은 틀렸으니 개헌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이야말로 그가 민주국의 국회의장으로서 대단히 부적격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증거가 된다.
도대체 누가 개헌을 주장하는가? 개헌론은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문민정부 초기부터 끊임없이 정치판을 맴돌던 화두였다. 김대중정부는 내각제 개헌을 연계한 DJP 야합으로 출범했다.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김종필의 욕심이 작용했다. 노무현정부 때는 4년 중임제 '원 포인트 개헌'으로 시끄러웠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는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데 대한 반발로 개헌론이 대두됐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래도 이명박정부 때는 강력한 지지층을 확보했던 박근혜라는 차기(次期)가 있으니 이내 잠잠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강자가 없다.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고만고만한 후보들만 득시글거리니 자연히 연정(聯政)에 눈길이 가고, 더 많은 기회가 있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에 구미가 당긴다. 까놓고 말해 개헌론이 나온 첫 번째 이유다.
그러니까 개헌 주장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서 나온 게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는 건 더 말이 안 된다. 정치판 과두(寡頭)들의 욕심으로 인한 것일 뿐이다. 더 따져보면 대통령제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보다 강력하고 즉각적인 지도력이 요구되는 분단국가에 적합한 통치 구조다. 단임제는 3선개헌과 유신헌법 등 우리가 경험했던 독재의 폐단을 방치하기 위해 결정됐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는 모조리 개헌론에 시달렸다. 마치 5년 단임이 무능의 원인이고 부패의 근원이나 되듯이 말이다. 게다가 국민들은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데 개헌을 주장하는 과두들은 하나같이 내각제나 이와 다름없는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한다.
요즘은 한 술 더 뜬다. 여당 주자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드러내 놓고 연정(聯政)의 미덕을 내세운다. "선거 결과를 토대로 연정을 하는 체제가 돼야 정치가 안정된다"는 지론이다. 연정으로 정치가 안정된다는 건 정치학 책에도 없는 얘기다. 내각제에서 연정은 늘 '불안한 동거'일 뿐이다. 제1야당의 '전문경영인'인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교섭단체 연설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설(說)하면서 승자 독식의 권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언뜻, 그들은 권력 분산을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권력 나눠 먹자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 분산은 기능적 분산이어야지 인적(人的) 나눠 먹기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소치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내각제를 할 만한 국회 수준은 되는 것인가? 내각을 구성할 지식을 갖춘 의원이 몇이나 되는지 그들이 잘 알 것이다. 더 한심한 건 우리 정당들은 내각제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당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것이다. 보스 따라 정당을 만들다 보니 역사가 3년을 넘는 정당이 하나도 없는 데다 기간 당원은 한 줌밖에 안 되는 판에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내각제를 한다는 것인가? 우리 정당들은 결코 대중정당이 될 수 없는 '비민주적 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지난 총선에서 공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솔직히 말해 비례대표부터 나눠 먹기 아니었는가?
정말이지 부끄러워서라도 개헌을 어찌 입에 담는 것인가? 그저 권력에 줄을 서고, 아첨으로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든 자들이 마치 그게 다 통치 구조 때문인 것처럼 국민을 속인다. 무엇보다도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인기 영합적인 발언을 하는 걸 보면 이 나라 정치판은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절망감이 든다. '따뜻한 보수'니 '중도로 가야 한다'는 말을 하기는 쉽다. 더 많이 나눠 가지자고 하면서 다수의 빈자(貧者) 편에 서면 인기도 올라가고 표도 얻는다. 그러나 그게 권력을 얻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일 때 국가는 망한다. 나는 정말 내일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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