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 통신] 소가 웃을 일

김병구 서울정경부장

철저히 농락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내건 공약을 지키지 않은 뒤 박 대통령이 확약했던 터라 이번에는 반드시 '신'(新)공항을 건설할 것이라고 믿었다.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로 후보지를 최종 압축한 뒤 백지화했기 때문에 당연히 두 곳 중 한 곳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대구'경북'울산'경남, 부산의 지방자치단체와 시도민은 모두 그렇게 믿었다.

21일 프랑스 용역업체 관계자가 '김해공항 확장'을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행정부와 청와대는 '밀양으로 결정해도, 가덕도로 결정해도 걱정'이라며 두 곳 중 한 곳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기정사실화해왔다.

지난해 5개 시도 자치단체장이 용역 결과를 정치적 개입 없이 그대로 따르자고 합의한 대상 후보지도 당연히 2개 지역이었다. 용역 내용에 '김해공항 확장'을 또 하나의 대안으로 삼았다면 단체장들이 합의는 물론 만났을 리도 만무하다.

김해공항 확장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조사에서 안전성, 실효성 등의 측면에서 불가능하다고 판명났다. 신공항 논의 자체가 김해공항 확장불가를 전제로 출발했다는 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결국 국내에서 10여 년 동안 수차례 불가하다고 판단한 결론을 다시 뒤엎는 결론을 얻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외국업체에 1년 동안 용역을 맡긴 셈이다. 우리 정부는 공항 확장 여부조차 자체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로 전락해버렸다.

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된 21일 청와대는 긴 침묵을 지켰다. 단 한 줄의 공식 논평도 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신공항 입지선정 결과발표 1시간 전부터 국무회의를 주재했지만, 신공항의 '신'자도 꺼내지 않았다. 참모들은 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지역민들의 반발에 대비해 장시간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전언이다. 대책회의 하루 만에 나온 결론은 '(대선) 공약 파기가 아니다'였다. '김해공항 확장이 사실상 신공항'이라는 '소가 웃을'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공항 백지화 후 그나마 대국민 사과라도 했지만, 이 정부는 '공항 확장이 신공항'이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지역민을 '초등학생'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아니다.

청와대는 갈수록 확대되는 불균형과 소외에 쌓여가는 성난 민심을 목도하고도 둔감하거나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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