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5개 시도민이 염원했던 신공항의 꿈이 또다시 무산된 데에는 수도권 중심 사고에 갇힌 수도권 언론이 있었다. 지난 2011년 신공항 백지화 당시 수도권 언론은 신공항 건설을 염원하는 영남권을 지역 이기주의에 매달리는 집단으로 묘사하고, 신공항 백지화야말로 국익과 나라를 위한 주장인 것처럼 호도했다.
그리고 5년. 이번에도 수도권 언론은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의 일등 공신이 됐다. 신공항 무용론과 지역 갈등 망국론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했다.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의 대안으로 제시한 김해공항 확장안은 수도권 정치인과 언론들이 5년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것이다. 수도권 언론은 김해공항 확장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선 입을 닫고,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이라는 정부 입장만 일방적으로 퍼 나르고 있다.
◆신공항 무용론
동아일보는 23일 자 신문에 '참으로 부족한 박 대통령의 갈등관리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김해공항 확장' 연구용역 결론을 검증하겠다는 대구시를 비난하고, "지금도 고추 말리는 데나 쓰는 지방 공항이 많은 현실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바로 '신공항 무용론'이다.
신공항 무용론은 2011년 이명박정부 때부터 수도권 정치인과 언론이 주장해 왔던 한결같은 레퍼토리다. 2011년 3월 정두언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또 22조원을 들여서 고추를 말릴 수는 없는 거다"라고 한 게 기폭제가 됐다. 당시 수도권 언론은 '영남에 무슨 신공항이 필요하냐'며 신공항 백지화에 앞장섰다.
이번에도 수도권 언론은 '신공항 무용론'을 들고 나왔다. 결과 발표 3, 4일 전부터 "신공항이 꼭 필요하냐"며 재를 뿌렸다. 결국 신공항 백지화를 이끌어 낸 수도권 언론들은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는 합리적인 결정"이라며 일제히 환영을 표하며 '인천공항 독점주의' '수도권 중심주의'를 재확인했다.
◆지역 이기주의 매도
수도권 언론들은 영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을 지역 이권 사업으로 매도하며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PIMFY: 수익성 있는 사업을 내 지역에 유치하겠다) 현상이라고 헐뜯었다. 신공항 같은 국책 사업은 100% 국고로 지원되는 데다 향후 운영 과정에서 적자가 나도 지방자치단체로선 책임질 일이 전혀 없고, 일단 따놓기만 하면 '로또'라는 생각이 과열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영남권 5개 시도의 신공항 염원이 집단 이기주의로 전락한 것이다.
입지발표가 다가오자 신공항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에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같은 혐오시설도 떠넘겨야 한다는 식의 보도(조선일보 15일 자 1면, 매일경제 20일 자 2면 보도)도 잇따랐다.
정작 수도권 언론들은 지방의 희생은 나 몰라라 했다. 경북이 수십 년간 중앙정부의 골칫덩이였던 중'저준위(원전 정비 과정에서 사용한 덧신이나 장갑, 작업복 등) 방폐장을 끌어안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받았다는 점은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지역 갈등 조장
수도권 언론은 부산의 독자적인 과열 유치경쟁을 마치 영남권 전체의 갈등과 분열인 양 호도했다. 제2 관문공항의 당위성과 영남권 발전을 위한 신공항의 필요성을 언급한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밀양과 가덕도의 입지 경쟁을 논리적으로 비교하는 기사 없이 단순히 지역 갈등으로만 부각했다.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 간 입지 경쟁을 대구와 부산의 갈등 구조로만 분석한 것이다.
수도권 언론은 지난달 17일 대구, 경북, 울산, 경남 등 4개 시도지사가 부산의 유치활동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한 이후 '영남권 신공항 갈등 재점화' '5개 광역단체 다시 충돌' 등의 보도를 했다.
이 성명은 지난해 1월 영남권 5개 시도가 맺은 '유치 활동 자제' 합의를 어긴 부산에 대응하려는 것이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었다. 오히려 부산이 14일 가덕도 유치를 위한 범시민대회를 열자 기다렸다는 듯 '갈등' 기사를 쏟아냈다. '영남권 신공항 갈등' '새누리당 텃밭 표심 양분' '국론 분열 부채질 신공항' 등 5년 전 신공항 백지화 당시의 판박이 기사를 양산하면서 신공항 문제가 지역 갈등으로 빚어진 산물이라는 인식을 조장했다. 신공항 무산 이후에도 수도권 언론은 사설 등을 통해 "온 나라를 국론분열로 몰고 갔던 영남권 신공항이 또 무산됐다"며 마치 지역 갈등이 신공항 백지화의 원인인 것처럼 보도했다.
◆김해공항 확장 맹신
수도권 언론들은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의 대안으로 제시한 김해공항 확장에 대해선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영남권 5개 시도가 요구하는 '김해공항 확장안' 검증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수도권 언론은 23일 자 신문에서 ▷박 대통령, 김해 신공항 성공에 최선(조선일보 1면) ▷김해공항 신공항급 확장 최선의 방안(중앙일보 1면) 등 정부 입장만 일제히 받아쓰기했다. 그러면서 김해공항 활주로는 '콜럼버스의 달걀'(조선일보 2면)이라는 등 김해공항 확장의 장점만 부각해 상세히 소개했다.
반면 김해공항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선 침묵했다. 국토교통부와 부산시 등이 2002~2009년 6차례에 걸쳐 김해공항 확장 방안 용역을 진행했고 모두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 사실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해공항 확장이 부산시 개발계획과 충돌할 수 있고, 산악지형의 안전성이나 활주로 운영의 비효율 측면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영남권 5개 시도 여론에 대해서도 입을 닫았다.
수도권 언론의 이 같은 보도 행태에 대해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수도권 중심 사고와 지방에 대한 무지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했다. 수도권 독자, 기존 공항 독점을 고집하는 수도권 사고만 반영하느라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지방의 열망, 백지화에 따른 배신감, 분노 등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결국 수도권 언론의 신공항 보도 행태는 수도권 이기주의의 산물"이라며 "이는 지방의 차별화, 식민지화를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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