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런던 시민도 "당황 스럽다"…브렉시트 확정 후 불안감 확산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할 말이 없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확정된 24일(현지시간) 오전 런던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카나리 워프는 금융회사를 비롯해 다국적 기업의 유럽 지사 등이 밀집해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한 곳이다. 이날 오전 출근길에선 영국 선거관리위원회의 최종 개표 결과 발표에 앞서 각종 언론과 SNS를 통해 탈퇴 소식을 접한 탓인지 혼란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틈틈이 무리 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회사원들은 평소보다 많았다. 석간 무가지인 '이브닝스탠더드' 1면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부부가 투표소를 나오는 사진이 실렸다. 'We're out'(우리는 나왔다)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이날 캐머런 총리는 올 10월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후임으로는 탈퇴 진영을 이끌었던 보수당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 유력하다.

런던 내 EU 회원국 근로자 사이에선 불안감이 감지됐다. 영국 근로자 가운데 EU 국가 출신은 5% 정도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이주와 노동의 자유를 누리던 EU 국민은 영국 내 취업을 위해 높은 수준의 기술과 까다로운 취업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로이드 은행에 근무하는 마크 씨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잔류를 선택했다"며 "영국에서 신자유주의는 끝났다. 대영제국(Great Britain)의 영광은 작은 영국(Little England)으로 끝날 것이다"고 했다. 프랑스 출신 마리 씨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탈퇴 협상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금융계 종사자가 많은 곳인 만큼 외환 거래에 따른 희비도 엇갈렸다. 전날까지 잔류와 탈퇴에 대해 내기하고 외환 매매를 했던 이들의 표정은 천차만별이었다. 회사원 매튜 씨는 "파운드화 하락을 예상하고 집세 낼 돈을 달러로 바꿨는데 큰돈을 벌었다"며 웃었지만, 변호사 크리스티나 씨는 "가진 달러를 모두 파운드로 바꿨는데 환율이 엉망"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런던에서는 유권자 절반 이상이 'EU 잔류'에 투표했다. 특히 금융기관이 밀집한 시티 오브 런던에서는 75.3%, 국회의사당이 있는 지역구인 웨스트민스터에서는 69%가 잔류를 택했다. 결과를 지켜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상당수 시민은 투표 결과에 대해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탈퇴 지지자 일부는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이라며 환호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민 억제나 복지 비용 감축 등의 효과에 주목했지만 대체로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브렉시트 반대 진영은 이날 이른 시간부터 영국 국회의사당인 빅 벤 주변에 피켓을 들고 모여 결과에 불복하는 집회를 이어갔다. 29일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릴 '런던 잔류' 집회에는 3만 명 이상이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일각에선 '런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적'경제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후폭풍을 막으려는 정부, 기관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노동당 출신으로 지난 5월 런던 시장에 당선된 사디크 칸은 페이스북에서 "런던 내 유럽국가 거주자들이 도시를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감사히 여긴다"면서 "이 투표로 생길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런던 내 가장 규모가 큰 대학인 UCL은 재학생과 입학 예정자 등에게 메일을 보내 "EU 탈퇴와 관련한 구체적인 결정이 나기 전까지 EU 국가 출신 학생이 등록금, 장학금 등에서 다른 대우를 받지 않게 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EU 회원국 학생이 내는 등록금은 비EU 회원국 학생 학비의 절반을 약간 넘는 정도다. 영국의 EU 탈퇴가 확정되면 영국 내 EU 국가 유학생이 줄어들 전망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차갑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켄 씨는 "EU 탈퇴가 학교 재정에 악영향을 미쳐 등록금이 인상될 것이다"면서 "외국 취업도 어려워질 것이다. 오늘 기득권층의 선택으로 내 취업문이 막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출신 샬롯 씨는 "오늘 영국 친구들로부터 결혼하자는 농담을 서너 차례 들었다"며 "결혼 비자를 받아 EU 국가에 취업하려는 친구들을 보니 이 상황이 실감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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