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더티 폭스바겐

2010년 2월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자동차 사장은 미국 하원 청문회 출석을 통보받았다. 액셀러레이터 부품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 사망사고가 줄을 잇고 소비자 불신이 확산되는 시점이었다. 당초 도요타 측은 미 현지법인 대표를 출석시킬 방침이었다. 하지만 미국 내 반응이 심상찮았다. "미 의회와 미국 국민에게 해명하려는 열의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일본 내 반응은 엇갈렸다. 정치적 의도가 깔린 '도요타 추궁'이라는 불만이 높았다. 하지만 마이니치 신문은 '청문회를 만회의 기회로 삼자'는 사설을 실었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현지 여론과 정치 동향까지 고려한 위기관리가 필요하다는 논지였다. 판매의 세계화에 경영의 세계화가 따라가지 못한 인식 차이를 거론하며 늑장 대응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최고경영자가 성심껏 해명하고 정면 대응하는 길이 기업 미래에 훨씬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키오 사장이 청문회에 출석했고 리콜과 배상을 선언했다. 이 해법은 도요타가 적어도 미국 시장에서는 불과 몇 년 만에 다시 정상화하는데 좋은 발판이 됐다.

'클린 디젤'을 내세워 파죽지세였던 폭스바겐이 '더티 폭스바겐'으로 낙인될 처지다. 디젤차 배출가스 데이터를 조작해 소비자 눈을 속인 것도 모자라 후속 처리도 '배 째라'식이어서다. 폭스바겐은 24일 피해를 입은 미국 소비자에게 모두 102억달러(12조원)를 보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 등 다른 국가에 대한 보상안은 밝히지 않았다.

조작 프로그램을 달고 국내에서 판매된 폭스바겐 디젤 차량은 12만여 대에 이른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미국과 한국의 기준이 다르고, 한국에서는 임의설정 프로그램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으니 조작이 아니다"고 둘러대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와 검찰의 생각은 다르다. 환경부는 폭스바겐코리아의 결함시정 계획서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계속 리콜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검찰도 배출가스'소음 시험성적서 위조 등의 혐의로 한국법인 임원을 구속하면서 본사 지시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인증 규정을 따랐으니 제도 탓이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이런 행태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소비자를 속이고 배상까지 뭉개는 기업 제품을 사겠나. 기업이 신뢰를 잃으면 시장만 잃는 게 아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