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박 대통령의 착각과 오판

대구경북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성이었다. 그만큼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남달랐다. 수도권에서는 '무조건 박근혜'를 외치는 지역민의 성향을 의아하게 여기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점잖게는 대구경북 특유의 보수성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분석했고, 극단적으로는 '꼴통' 혹은 '또라이'라고 공격했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지역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했다. 박 대통령이 특별히 뛰어나서도 아니었고, 동향인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우러러봐서도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부채 의식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빈농이 많고 굶주렸던 영남 지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 당시의 경제개발은 경부선 축을 따라 경상도 지역에 집중됐고, 구미 포항 울산 같은 공업도시가 생겨났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에 딸인 박 대통령에게도 과도한 애정을 보냈다.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인 종말도 지역민의 마음을 끌어낸 요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원칙과 소신'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품성이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처리 때의 소신과 청탁을 거부하고 타협하지 않은 원칙론이 그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에서 괴한의 칼을 맞고 깨어나자마자 "대전(선거)은요?"를 묻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은 지역의 기질과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누구도 원칙과 소신이 오만과 아집의 또 다른 얼굴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후 지역민과 박 대통령이 새롭게 관계 설정을 한 것은 2013년 대통령 취임 직후다. 지역민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 의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기에 박 대통령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딸까지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줬는데 더는 오명이나 손가락질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대구에 야당 1명과 무소속 3명이 당선된 것은 그 변화상을 보여준 사례다. 예전처럼 '박근혜를 도와야 한다'며 노년층이 몰려가 1번을 찍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정부의 신공항 무산 결정은 지역민의 박 대통령에 대한 인식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 결정은 지역민에게 '제 것 주고 뺨 맞는' 바보나 되라고 강요하는 행위였다. 대구경북의 요구는 대통령과 동향이라고 편을 들어달라는 얘기는 아니었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부산 손을 들어주는 결정이었다. 부산은 보란 듯이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달리, 신공항 무산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고 김해공항 확장을 신공항이라고 우길 뿐이다.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를 위해 대구경북의 꿈과 열망을 저버렸다고 분석했다. 대구경북 친박(親朴)은 충분히 달랠 수 있는 '집토끼'라고 여겼고, 부산 친박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산토끼'여서 이런 황당한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레임덕을 막고 퇴임 후를 기약하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완벽한 착각이다. '출세의 길에는 배신당한 우정이 널려 있다'는 옛말처럼, 박 대통령은 대구경북을 그저 이용 대상으로 여겼다.

지역 민심은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출세욕이나 기득권 유지에 불타는 친박이나 일부 노인층은 박 대통령을 예전 그대로 보겠지만, 여론 주도층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임기 막판의 박 대통령에게는 배신당하고 상처입은 지역민의 마음을 되돌릴 만한 카드가 더는 남아있지 않다. 이제 서로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에게 다시 대구경북을 찾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지역민은 의리 없는 분과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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