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큰 수레, 작은 수레

석가모니 열반 후 몇백 년이 지난 인도 불교계에서는 '수레'(乘) 논쟁이 벌어졌다. 불교 가르침의 본질이 큰 수레(대승'大乘)인가, 작은 수레(소승'小乘)인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 인도에서는 승려들이 개인적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 경전에 대한 주석적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불교가 대중과 유리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도의 개혁적 불제자들은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뇌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 불교의 더 중요한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불이 난 집에는 큰 수레를 끌고 들어가 많은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대승이라고 일컫고, 기존 불교를 소승이라고 낮춰 불렀다.

대승불교는 중국'티베트'한국'일본 등으로 전해지며 북방불교의 주류를 형성했다. 초기 불교는 미얀마'태국'스리랑카로 건너가 남방불교의 주류가 됐다. 남방불교도들은 소승이라는 용어에 동의하지 않고 스스로를 상좌부 불교라고 부른다. 그들은 상좌부 불교야말로 석가의 법통을 이은 가르침이며 대승불교는 석가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교가 전해진 이래 우리나라에서 대승이라는 말은 '사사로운 이익이나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최근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 국무총리의 입에서 '대승'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황교안 총리는 TK국회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승적 견지에서 (김해공항의 확장) 결과를 수용해 달라"라고 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총리가 민심을 수습하겠다며 내놓은 립서비스치고는 적잖이 실망스럽다. 대구경북민들의 상실감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고 대승이라는 표현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정부가 대구경북민들의 염원을 지역이기주의로 생각하고 있다는 속내를 은연중에 내비친 것은 아닌가.

부산과 달리, 대구경북은 신공항 사안에서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대구경북이 염두에 둔 신공항 후보지는 경남 밀양이 아니라, 영천이었다. 지역 간 중복 투자에 따른 국가적 낭비를 막고 PK와의 소모적 유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영천 꿈'을 접고 밀양을 밀었던 것이다.

대구경북민들은 도대체 얼마나 더 양보해야 대승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러다가는 대구경북민들, 집단 성불(成佛)마저 요구받을지도 모르겠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